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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당의 문인화방

창현 선생의 귀거래사를 오랫동안 바라보며

 

 

 

 창현선생의 귀거래사란 작품을 오랫동안 보고 있습니다.

 

순지에 유화 대작인데 구도가 특이한 느낌을 주는 그림입니다.

화폭을 종으로 가로지르며 두 거대한 암벽이 벌어져 있고 그 틈새로 손바닥만한 하늘이 붉게 타오릅니다.

장엄하고 괴기한 느낌을 주는 거대한 암벽의 틈새 골짜기 저 아래에서

거대한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자연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사람의 존재를 한없이 작게 그리고 가장 아래쪽에 표현한 의도는

 자연의 위대함을 상대적으로 높이기 위한 의도일 것입니다.

     골짜기가 얼마나 깊은지 손바닥만큼 밖에 되지 않는 하늘이 붉게 노을이 지고 있습니다.

     암벽에는 푸르럼이라고는 없군요.

     이 골짜기에서 버틴 장구한 세월의 깊이를 바위에서 찾아봅니다.

     바위는 세월에 갈라지고 부르트며 온갖 풍상을 견뎌오며 당당합니다.

     사람이 느낄 수 없는 속이 시커멓게 탄 바위는 그래서 꿋꿋합니다.

     수천 만 년을 버텨 온 바위에는 황량한 메마름으로도 살아가는 이끼가 가득해 보입니다.

 

       거대한 바위의 가랑이  사이가 벌어졌습니다.

     그 아래로는 틀림없이 물이 흐를 것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서 음기가 강하게 풍기는 작품이라는 즐거운 상상을 합니다.

      

      하늘과 땅이 만나서 인간이 나왔고

      인간은 이제 치열하고 오욕에 찬 과거를 버리고 포근한 자연으로 되돌아가려고 합니다.

      사람이 가장 포근함을 느끼는 곳이 어디일까요? 태반이 아닐까요?

      그런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회귀본능이 은연중에 암시되는 모습입니다.

 

      관모를 쓰고 있는 모습은 말단 관리로 살았던 도연명 시인일수도 있겠군요.

 

            허허. 세상의 부귀영화를 초월하여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텅 비우고 한없이 자신을 낮추며

      자연처럼 살아가면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찾는 이런 존재 양식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도연명 시인은 미관말직에 있으면서 세파에 시달리다가 전원생활로 되돌아가며 이 유명한 시를 남깁니다.

      큰 출세를 바라지 않고 현실에 안분자족하는 실천적 삶을 살았던 시인은 자연으로 되돌아가자고 합니다.

      이는 패배한 생활인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되며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찾기 위해 큰 결단을 내린 용기로 해석합니다.

 

 

       귀거래는 주역에 “천하 만물이 가고 돌아오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으니 이제 자연으로 돌아면서 삶을 돌아보고 노후의 안분을 즐기는 것도 자연의 이치에 따른 무위자연의 사람입니다.

 

                             

                                                                                        선묵유거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