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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당의 문인화방

창현 박종회 선생의 그림 한 점을 감상하며 : 한적

     

 

       창현 박종회 선생의 '한적'이란 작품입니다.

 

     대가의 작품을 감상하며 글로 몇줄 옮기는 일이 어찌 보면 건방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방면에 전문적인 평론가가 아닌

    문화 예술을 보고 즐기는 단순한 풍류객이기에 나무라지 마소서.

 

    님의 화집을 수년동안 바라보면서 어렵고 단순해서 제 호기심이 닿지않던 작품이었는데

    오늘은 제가 작품 속에 녹아듭니다.

 

    과연 이 작품을 완성하는 동안 몇 획이 지나간 것인지.......

    그림의 대부분은 분명히 몇 획만이  흐를 뿐입니다.

    한 획은 위에서 아래로 마치 물처럼 유연하게 흐르듯 내려오며 다른 획과 만납니다.

   그 획의 앞쪽에는 마치 산처럼 솟구친 두 획이 힘차게 위로 솟구치고 있군요.

 

   산은 기필에서 갈필로  잠순간에 솟구치다가 내려옵니다. 

   물을 듬뿍 머금은 붓은 유연하게 아래로 흐르다가 때론 성급하게 산모퉁이를 돌아갑니다.

   깊은 물과 얕은 물이 느리거나 빠르게 흐르다가 산굽이를 돌아갑니다.

   리듬이 느껴집니다.

   산꼭대기에는 푸르름이 한 획으로 하늘빛인지  나무인지 머무릅니다.

 

이 그림을 바라보면서

언뜻 제 지난 어느 날의 기행이 생각이 나는군요.

섬진강 강물처럼 흐르고 싶어서 상류에서부터 아래로 떠내려갔지요

간단한 장비만 착용한채 물속으로 물 위로 흐르다 며칠만에 멈추고 말았답니다.

남원에서 하동으로 물처럼 흐르고 싶었는데

늪에 들었다가...... 그만.

 

흐르면서

물처럼 흐르면서

섬진강이 조물주의 위대한 붓으로 일필휘지한  한 획이었고 

  그 안에서 물고기처럼 흐르며

강에 대한 깊은 사유의 체험이었지요.

 

 

      섬진강을 한 눈에 담을 수 없어서

  안으로 들어가 흘렀네.

 

 

   한 획이

장엄하게

길게 흐르고 있었네.

 

  

 

    이 그림에서도 강은 한 획으로 흐르고 산은 한두획으로 표현됩니다.

    여기서 한 획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근본이거나 뿌리가 되는 한 획이라는 것을 알 것 같습니다.

    아마도 서예가들은 이런 한 획을 긋는 일이 가장 어려운 작업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군두더기를 수없이 그으며 자신의 평생을 바쳐 한 획을 긋는 그런 비장한 심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은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깊은 절제와 함축이라는 문인화 본연의 특성과 기품이 있습니다.

    그림 속의 화자는 큰 강, 거대한 산의 한모퉁이에서

    지팡이를 집고 꼿꼿한 허리로  슬며시 자연에 비켜 나 있습니다.  

    자연을 사랑하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입니다.

    그런 자유로움에서 자신을 비우고 바라보는 세상은

    참으로 한적하겠습니다.

   

     산과 강과 그 사이에 있는 자신입니다. 

    어찌보면 강은 음이요 산은 양입니다.

    그 사이에 있는 이는 음양이 가장 조화롭게 결합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런 그림을 바라보면 생각이 깊어집니다.

     좋은 작품을 감상하였습니다.

 

     

 

                                                       선묵유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