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팝나무가 하얀 꽃을 피우면 봄의 기운이 서서히 무르익어 간다.
한 포기에서 여러 가지들이 솟아나서 소박하지만 소담스럽게 꽃을 피우는 조팝나무다,
쌀처럼 백설기처럼 작고 하얀 꽃은 앙증스럽다.
어려서는 싸리나무로 잘못 알았지만 그 아련한 추억만은 진실한 것이다.
대갓집 뜰에는 목단꽃이 부귀와 권세와 영화를 누리며 피어나건만
조팝나무는 마을의 어귀나 산 모퉁이의 척박한 곳에서 피어나는 꽃이었다.
마치 손바닥만한 땅에서도 지극정성으로 농사를 짓는 소작농처럼
가늘고 긴 가지마다 좁쌀 같은 꽃들을 수두룩하게 피우는 나무다.
배고프던 시절이라 보릿고개는 다가오는데
길가에 핀 하얀 꽃들을 바라보면서
좁쌀처럼 생긴 나무로 이름을 붙이던 눈물겨운 꽃이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정착한 한적한 마을 어귀에는 지금 조팝나무가 한창이다.
아직도 조팝나무는 가시덤불이나 돌무더기에서 억척 같은 생명력으로 피어난다.
얼마지 않아서 이 도로변에는 이팝나무가 풍성하게 하얀 꽃을 피울 것이다.
어린 시절 끼니를 거르지 않을만한 형편이라, 우리 집은 남의 식구 둘과 함께 살았었다.
선친의 지인의 자녀들이었는데 우리 집 일이나 거들면서 굶기지 않으려는 고육지책이었던 것이다.
형뻘이고 누나뻘이어서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그리도 좋았던 아련한 기억이 떠오른다.
조팝나무 줄줄이 핀 꽃들을 바라보면 지금은 소식조차 알 수 없는 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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