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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허공스님과 김삿갓의 금강산에서의 시(스크랩)

 

 



 

 

24. 朝登立石雲生足

금강산을 찬미하는 시 한 수씩을 주고 받은 空虛스님과 김삿갓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百年知己를 만난 듯 肝膽相照하는 사이가 되었다. 두 분은 모두 仙境에 노니는 詩仙이면서 大酒家이기도 했다.

 

연일 穀茶 대접을 받으며 空虛와 더불어 詠風弄月하던 김삿갓은 어느 날 공허스님의 뒤를 따라 立石峰에 올랐다. 봉우리에 오르자마자 공허스님은 경관에 취하여 시흥이 절로 솟아 오르는지 또 다시 시 짖기 내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이번에는 시를 한 수씩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먼저 한 줄 읊거든 그 시에 對照되는 시를 한 줄씩 對句를 채우라는 것이었다. '제가 어찌 감히 스님의 시에 대를---' 하면서 겉으로는 겸손해 하지만 속으로는 얼씨구나 하고 쾌재를 부르는 김삿갓이었다.

 

아침에 입석봉에 오르니 구름이 발 밑에 일고

朝登立石雲生足

공허스님은 산 밑에 떠도는 구름을 그윽이 굽어 보다가 이렇게 읊었다. 참으로 실감 나는 즉흥시였다. 대구를 찾는 김삿갓은 입석봉에 오르는 도중의 산 밑에 황천담이 있던 것을 머리에 떠 올렸다.

저녁에 황천담의 물을 마시니 달이 입술에 걸린다.

暮飮黃泉月掛唇

하고 화답하였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대구라" 고 칭찬하면서 공허는 다시 시야를 둘러보고는 다음과 같이 읊는다.

 

골짜기 소나무가 남으로 누었으니 북풍임을 알겠고

澗松南臥知北風

김삿갓이 다시 화답한다.

난간의 대나무 그림자 동으로 기우니 해지는 줄 알겠네.

軒竹東傾覺日西

 

공허스님이 또 읊는다.

절벽이 위태로워도 꽃은 웃는 듯 피어 있고

絶壁雖危花笑立

김삿갓의 화답.

봄은 더 없이 좋아도 새는 울며 돌아가네.

陽春最好鳥啼歸

 

공허스님이 무릎을 치며 또 다시 읊는다.

하늘 위의 흰 구름은 내일의 비가 되고

天上白雲明日雨

김삿갓이 應口輒對로 다시 화답한다.

바위틈의 낙엽은 지난해 가을 것이로다.

 

岩間落葉去年秋

<天上白雲> <岩間落葉>은 하늘과 땅을 말한 좋은 대조려니와, <明日雨> <去年秋>는 더욱 멋들어진 대조가 아닐 수 없었다. 공허스님은 그럴수록 시흥이 도도해 오는지, 얼굴에 환희의 빛이 넘쳐 올랐다. ---계속---

 

25. 影浸綠水衣無濕

立石峰에서의 시 짖기 내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空虛스님은 김삿갓을 환희에 넘친 눈으로 바라보며 다시 한 수를 읊는다.

그림자가 푸른 물에 잠겼건만 옷은 젖지 않고

影浸綠水衣無濕

공허스님의 시에는 禪味가 넘쳐흘렀다. 그림자가 물에 잠겨도 옷은 젖지 않는다는 말은 그 얼마나 기발한 詩想인가. 그러나 김삿갓의 화답도 그에 못지않게 멋이 들었다.

꿈에 청산을 누볐건만 다리는 고달프지 않네.

夢踏靑山脚不苦

말이 떨어지자마자 척척 받아 넘기는 김삿갓의 비상한 재주에 공허스님은 三歎四歎을 마지않으며 또 한 수를 읊는다.

 

청산을 사고 보니 구름은 절로 얻은 셈이고

靑山買得雲空得

김삿갓의 거침없는 화답.

맑은 물가에 오니 물고기가 절로 따라 오네.

白水臨來魚自來

 

공허스님은 돌 한 덩어리를 굴리며 다시 읊는다.

산에서 돌을 굴리니 천년 만에야 땅에 닿겠고

石轉千年方到地

김삿갓이 즉석에서 대구한다.

산이 한 자만 더 높으면 하늘에 닿았으리.

峰高一尺敢摩天

 

공허스님은 거기까지 어울리다가 感興을 억제할 길 없는지 김삿갓의 손을 덥석 잡는다. "삿갓선생! 우리가 이제야 만난 것이 너무 늦었어요. 허나 내 오늘 이런 기쁨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술을 좀 준비해 가지고 왔소이다." 하면서 바랑 속에서 술과 안주를 내어놓는다.

그래서 김삿갓은 입석봉 상상봉에서 삼라만상을 굽어보며 뜻하지 못했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스님이 권하는 대로 몇 잔을 거듭 마신 김삿갓은 흥에 겨워 古詩 한 수를 읊었다.

장부는 반드시 지기를 만나게 되는 법

한 세상 유유히 군말 없이 살고 지고.

丈夫會應有知己

世上悠悠安足論

 

이 시는 옛날 시인 張謂가 喬林禪師라는 高僧을 만났을 때의 기쁨을 노래한 시였다. 공허스님은 그 시의 뜻을 대뜸 알아듣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고 行雲流水와 같은 김삿갓의 人生行脚이 오히려 부러운 듯 그 역시 張謂의 시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화답하는 것이었다.

술이 있으면 얼추 취하는 그대가 부럽고

돈이 없어도 근심 안 하는 그대가 부럽소.

羨君有酒能便醉

羨君無錢能不憂

 

그야말로 변죽을 두드리면 복판이 울리는 酬酌이었다. 이날 밤 그들은 달을 바라보며 별을 바라보며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계속--

 

26. 月白雪白天地白

공허스님과 김삿갓의 술 마시기와 글 짖기는 밤늦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공허스님은 취중에도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며 다시 읊는다.

달도 희고 눈도 희고 하늘과 땅도 희고

月白雪白天地白

김삿갓이 이에 화답한다.

산도 깊고 밤도 깊고 나그네의 시름도 깊구나.

山深夜深客愁深

공허스님이 또 흥얼거린다.

등불을 켜고 끔으로써 낮과 밤이 갈리고

燈前燈後分晝夜

 

김삿갓이 또 화답한다.

산의 남과 북을 봄으로써 음지와 양지를 헤아린다.

山南山北判陰陽

 

다음날 아침 두 사람은 산을 내려오다가 樵童을 만났다. 공허스님은 장난기가 동하여 또 한 번 도전을 한다.

구름은 초동의 머리 위에 피어나고

雲從樵兒頭上起

김삿갓이 대구를 찾으려는데 마침 냇가에서 아낙네의 빨래방망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산은 아낙네의 빨래소리로 울리네.

山入漂娥手裏鳴

 

마치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는 소년 같은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주고받는 수작에는 詩情이 한껏 무르녹아 있었다. 이 후 김삿갓은 공허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금강산을 두루 살펴보았다. 楡岾寺나 神溪寺 같은 사찰들은 물론, 九龍淵, 萬物相 등의 명소들도 빼지 않고 다 보았다. 보아도보아도 신비스럽기만 한 금강산이었다.

 

공허스님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진리를 배운다고 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도 진리요, 봄이 오면 꽃이 피는 것도 진리이고, 흘러가는 물소리에서도 진리를 깨닫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雪岩禪師의 偈頌 한수를 들여 주는 것이었다.

냇물소리 이것이 바로 설법이거니

팔만대장경을 모두 흘려버리네.

우습다 서역 땅의 늙은 부처님

사십 구 년 동안 헛수고 하셨네.

溪聲自是長廣舌

八萬眞經俱漏洩

可笑西天老釋迦

徒勞四十九年說

 

불교의 진리는 팔만대장경 속에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눈과 귀를 가지면 흘러가는 물소리에서도 우주의 섭리를 인식할 수 있다는 그 超脫한 詩想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강산을 찬미하는 시 한 수씩을 주고 받은 空虛스님과 김삿갓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百年知己를 만난 듯 肝膽相照하는 사이가 되었다. 두 분은 모두 仙境에 노니는 詩仙이면서 大酒家이기도 했다.

 

연일 穀茶 대접을 받으며 空虛와 더불어 詠風弄月하던 김삿갓은 어느 날 공허스님의 뒤를 따라 立石峰에 올랐다. 봉우리에 오르자마자 공허스님은 경관에 취하여 시흥이 절로 솟아 오르는지 또 다시 시 짖기 내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이번에는 시를 한 수씩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먼저 한 줄 읊거든 그 시에 對照되는 시를 한 줄씩 對句를 채우라는 것이었다. '제가 어찌 감히 스님의 시에 대를---' 하면서 겉으로는 겸손해 하지만 속으로는 얼씨구나 하고 쾌재를 부르는 김삿갓이었다.

 

아침에 입석봉에 오르니 구름이 발 밑에 일고

朝登立石雲生足

공허스님은 산 밑에 떠도는 구름을 그윽이 굽어 보다가 이렇게 읊었다. 참으로 실감 나는 즉흥시였다. 대구를 찾는 김삿갓은 입석봉에 오르는 도중의 산 밑에 황천담이 있던 것을 머리에 떠 올렸다.

저녁에 황천담의 물을 마시니 달이 입술에 걸린다.

暮飮黃泉月掛唇

하고 화답하였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대구라" 고 칭찬하면서 공허는 다시 시야를 둘러보고는 다음과 같이 읊는다.

 

골짜기 소나무가 남으로 누었으니 북풍임을 알겠고

澗松南臥知北風

김삿갓이 다시 화답한다.

난간의 대나무 그림자 동으로 기우니 해지는 줄 알겠네.

軒竹東傾覺日西

 

공허스님이 또 읊는다.

절벽이 위태로워도 꽃은 웃는 듯 피어 있고

絶壁雖危花笑立

김삿갓의 화답.

봄은 더 없이 좋아도 새는 울며 돌아가네.

陽春最好鳥啼歸

 

공허스님이 무릎을 치며 또 다시 읊는다.

하늘 위의 흰 구름은 내일의 비가 되고

天上白雲明日雨

김삿갓이 應口輒對로 다시 화답한다.

바위틈의 낙엽은 지난해 가을 것이로다.

岩間落葉去年秋

 

<天上白雲> <岩間落葉>은 하늘과 땅을 말한 좋은 대조려니와, <明日雨> <去年秋>는 더욱 멋들어진 대조가 아닐 수 없었다. 공허스님은 그럴수록 시흥이 도도해 오는지, 얼굴에 환희의 빛이 넘쳐 올랐다. ---계속---

 

25. 影浸綠水衣無濕

立石峰에서의 시 짖기 내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空虛스님은 김삿갓을 환희에 넘친 눈으로 바라보며 다시 한 수를 읊는다.

그림자가 푸른 물에 잠겼건만 옷은 젖지 않고

影浸綠水衣無濕

공허스님의 시에는 禪味가 넘쳐흘렀다. 그림자가 물에 잠겨도 옷은 젖지 않는다는 말은 그 얼마나 기발한 詩想인가. 그러나 김삿갓의 화답도 그에 못지않게 멋이 들었다.

꿈에 청산을 누볐건만 다리는 고달프지 않네.

夢踏靑山脚不苦

말이 떨어지자마자 척척 받아 넘기는 김삿갓의 비상한 재주에 공허스님은 三歎四歎을 마지않으며 또 한 수를 읊는다.

청산을 사고 보니 구름은 절로 얻은 셈이고

靑山買得雲空得

김삿갓의 거침없는 화답.

맑은 물가에 오니 물고기가 절로 따라 오네.

白水臨來魚自來

공허스님은 돌 한 덩어리를 굴리며 다시 읊는다.

산에서 돌을 굴리니 천년 만에야 땅에 닿겠고

石轉千年方到地

김삿갓이 즉석에서 대구한다.

산이 한 자만 더 높으면 하늘에 닿았으리.

峰高一尺敢摩天

공허스님은 거기까지 어울리다가 感興을 억제할 길 없는지 김삿갓의 손을 덥석 잡는다. "삿갓선생! 우리가 이제야 만난 것이 너무 늦었어요. 허나 내 오늘 이런 기쁨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술을 좀 준비해 가지고 왔소이다." 하면서 바랑 속에서 술과 안주를 내어놓는다.

그래서 김삿갓은 입석봉 상상봉에서 삼라만상을 굽어보며 뜻하지 못했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스님이 권하는 대로 몇 잔을 거듭 마신 김삿갓은 흥에 겨워 古詩 한 수를 읊었다.

장부는 반드시 지기를 만나게 되는 법

한 세상 유유히 군말 없이 살고 지고.

丈夫會應有知己

世上悠悠安足論

이 시는 옛날 시인 張謂가 喬林禪師라는 高僧을 만났을 때의 기쁨을 노래한 시였다. 공허스님은 그 시의 뜻을 대뜸 알아듣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고 行雲流水와 같은 김삿갓의 人生行脚이 오히려 부러운 듯 그 역시 張謂의 시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화답하는 것이었다.

술이 있으면 얼추 취하는 그대가 부럽고

돈이 없어도 근심 안 하는 그대가 부럽소.

羨君有酒能便醉

羨君無錢能不憂

그야말로 변죽을 두드리면 복판이 울리는 酬酌이었다. 이날 밤 그들은 달을 바라보며 별을 바라보며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계속--

 

26. 月白雪白天地白

공허스님과 김삿갓의 술 마시기와 글 짖기는 밤늦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공허스님은 취중에도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며 다시 읊는다.

 

달도 희고 눈도 희고 하늘과 땅도 희고

月白雪白天地白

김삿갓이 이에 화답한다.

산도 깊고 밤도 깊고 나그네의 시름도 깊구나.

山深夜深客愁深

 

공허스님이 또 흥얼거린다.

등불을 켜고 끔으로써 낮과 밤이 갈리고

燈前燈後分晝夜

김삿갓이 또 화답한다.

산의 남과 북을 봄으로써 음지와 양지를 헤아린다.

山南山北判陰陽

 

다음날 아침 두 사람은 산을 내려오다가 樵童을 만났다. 공허스님은 장난기가 동하여 또 한 번 도전을 한다.

구름은 초동의 머리 위에 피어나고

雲從樵兒頭上起

김삿갓이 대구를 찾으려는데 마침 냇가에서 아낙네의 빨래방망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산은 아낙네의 빨래소리로 울리네.

山入漂娥手裏鳴

 

마치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는 소년 같은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주고받는 수작에는 詩情이 한껏 무르녹아 있었다. 이 후 김삿갓은 공허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금강산을 두루 살펴보았다. 楡岾寺나 神溪寺 같은 사찰들은 물론, 九龍淵, 萬物相 등의 명소들도 빼지 않고 다 보았다. 보아도보아도 신비스럽기만 한 금강산이었다.

 

공허스님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진리를 배운다고 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도 진리요, 봄이 오면 꽃이 피는 것도 진리이고, 흘러가는 물소리에서도 진리를 깨닫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雪岩禪師의 偈頌 한수를 들여 주는 것이었다.

 

냇물소리 이것이 바로 설법이거니

팔만대장경을 모두 흘려버리네.

우습다 서역 땅의 늙은 부처님

사십 구 년 동안 헛수고 하셨네.

溪聲自是長廣舌

八萬眞經俱漏洩

可笑西天老釋迦

徒勞四十九年說

불교의 진리는 팔만대장경 속에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눈과 귀를 가지면 흘러가는 물소리에서도 우주의 섭리를 인식할 수 있다는 그 超脫한 詩想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24. 朝登立石雲生足

허공스님과 김삿갓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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