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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오돌개 한 상자

  

오돌개(오디) 한 상자가 배달되었다.

경주 양북면의 어일에서 35년 전의 제자 허원융, 원술 군 두 형제가 보낸 것이다.

허군 형제가 졸업 후 처음으로 이 먼 곳까지 방문을 한지 두어 달 지났는데

이번에는 뽕나무 가지 사이로 손을 뻗어 몇 천 번을 따서 모은 오디를 즙을 내어서

마시기 좋게 팩으로 보낸 것이다.

 

문득 옛 생각이 난다.

첫 눈이 내리는 등굣길 교문에서 함박 웃음을 머금은 아이들이

눈 한 웅큼씩을 출근하는 선생님들 얼굴로 집어 던졌었다.

그러나 유독 나에게는 던지는 녀석이 없었다.

평소에 근엄했던 탓인지, 장난을 걸어올 만큼 만만하지가 않았던 것인지,

혹시 무서웠는지 모르지만 내심 서운하기까지 했었다.

 

 

 

 

선생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다.

인기에 영합하여 달콤한 말로 가르치기보다는 모든 제자들에게 공정하게 대하고

쓴소리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믿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많은 세월이 흘러 제자들의 무의식의 심연에 그 가르침이 가라앉아 있어야 한다고.

그러다가 가끔씩 그런 가르침이 의식의 수면 위로 물방울처럼 솟아나야 하는 것이라며.......

그런 서운함을 위로했었다.

 

학교를 떠난 지 십년이 가까워지는 초로의 야인이 된 내게

오십에 가까운, 늘 수줍은 듯이 말하는 제자가

주먹에 뭉친 눈 대신에 오돌개를 몇 줌씩이나 들고 나를 향해 큐피트의 화살처럼 쏘아대니

오돌개 즙으로 내 얼굴이 검붉게 기쁨의 멍이 든다.

이마에도 눈가에도 주름살 깊은 곳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