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가을의 풍경을 접할 기회가 적다.
탈이 난 몸을 돌보느라 안강의 좁은 아파트에 머무르는 날들이 많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業인 거지 뭐.”
좋던 싫던 받아들이고 보듬어야 할 내 삶의 역사의 한 순간들이다.
잃어버린 듯한 가을을 보상 받기라도 하듯이 서화첩의 그림 한 점에 매료된다.
일사 구자무 선생의 추성(秋聲)이란 작품이다.
한 개의 바위와 풀 한 포기 그리고 풀벌레 한 마리로 가을의 소리를 그린 그림이다.
만추는 계절의 이행기다.
陽에서 陰으로의 이행이다.
動에서 靜으로의 이행이다.
외부적, 신체적 활동에서 내면적, 정신적 사유로의 이행이다.
눈 앞에 선한 가을의 풍경들.
씨 뿌리고 가꾼 것들을 거두고, 수목은 푸르럼의 옷을 벗고
헐벗고 굶주리며 혹독한 겨울의 고난으로 들어가는 때다.
쇠락해가는 풀잎, 낙엽을 우루루 몰려 다니는 을씨년스러운 바람으로
적막소조(寂寞蕭條)한 시절이다.
이 때 바위 틈 어디선가, 풀섶 어디선가 청아하게 울리는
풀벌레들의 울음은 쓸쓸하고 적막한 감상(感傷)에 흐르게 한다.
화가는 이 가을의 그런 분위기를 일충일초일석(一蟲一草一石)으로
군더더기를 버리고 간결하게 형상화하여 관조하고 있다.
그림의 제기(題記)에는 ‘ 추성 시산독화루주인 육십시화방직랑’이라고 쓰며 소회를 밝히고 있다.
방직란이란 베짱이를 일컫는 말인데 중국에서는 베짱이를 촉직(促織), 낙위, 낙사랑으로 부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