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원생활의 즐거움

가을의 소리(秋聲)

 

올해는 가을의 풍경을 접할 기회가 적다.

탈이 난 몸을 돌보느라 안강의 좁은 아파트에 머무르는 날들이 많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業인 거지 뭐.”

좋던 싫던 받아들이고 보듬어야 할 내 삶의 역사의 한 순간들이다.

 

잃어버린 듯한 가을을 보상 받기라도 하듯이 서화첩의 그림 한 점에 매료된다.

일사 구자무 선생의 추성(秋聲)이란 작품이다.

한 개의 바위와 풀 한 포기 그리고 풀벌레 한 마리로 가을의 소리를 그린 그림이다.

 

만추는 계절의 이행기다.

陽에서 陰으로의 이행이다.

動에서 靜으로의 이행이다.

외부적, 신체적 활동에서 내면적, 정신적 사유로의 이행이다.

 

눈 앞에 선한 가을의 풍경들.

씨 뿌리고 가꾼 것들을 거두고, 수목은 푸르럼의 옷을 벗고

헐벗고 굶주리며 혹독한 겨울의 고난으로 들어가는 때다.

쇠락해가는 풀잎, 낙엽을 우루루 몰려 다니는 을씨년스러운 바람으로

적막소조(寂寞蕭條)한 시절이다.

이 때 바위 틈 어디선가, 풀섶 어디선가 청아하게 울리는

풀벌레들의 울음은 쓸쓸하고 적막한 감상(感傷)에 흐르게 한다.

 

 

 

화가는 이 가을의 그런 분위기를 일충일초일석(一蟲一草一石)으로

군더더기를 버리고 간결하게 형상화하여 관조하고 있다.

그림의 제기(題記)에는 ‘ 추성 시산독화루주인 육십시화방직랑’이라고 쓰며 소회를 밝히고 있다.

방직란이란 베짱이를 일컫는 말인데 중국에서는 베짱이를 촉직(促織), 낙위, 낙사랑으로 부리기도 한다.

 

 

'전원생활의 즐거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궁이 지천으로 핀 야산  (0) 2015.11.29
만추의 수채화  (0) 2015.11.09
유홍초와 사랑  (0) 2015.11.03
감국향을 훔치다  (0) 2015.11.02
만추의 뜰  (0) 2015.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