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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의 즐거움

낙엽을 태우면서

 

연말부터 정초까지 감기가 들어서 두문불출하듯 보냈었는데

이제 한결 좋아져서 뜰에 나선다.

오전에는 바람이 차가웠는데 오후에는 날씨가 제법 풀린 듯하다.

 

 

 

 

낙엽이 바람에 휩쓸려 다니다 구석진 곳에서 서로 몸을 포개고 거친 숨을 몰아쉰다.

풍찬노숙(風餐露宿)을 하는 가련한 영혼들.

모체에서 분리된 잎들은 인연의 끈을 놓고 집착에서 벗어난 자유 영혼들.

 

벗은 나무들 틈새에 웅크린 낙엽들을 손으로 쓸어 모은다.

바싹 마른 잎들 사이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난다.

부서지기 좋도록 제 안에 남은 눈물이며 미련이 바싹 마른 것이다.

 

바스락 거리는 잎들을 메마른 바위 틈지기나 뒤엉킨 줄기 식물들 틈에서 집어 올려 바구니에 담는다.

삭정이가 된 잔가지며 꽃을 피우고 남은 폐허 같은 줄기들도 손에 집히는 대로 바구니에 담는다.

 

무심결이다.

 

 

 

 

한참 그러는 중에 내 어깻죽지가 처지고 갈비뼈 사이에서도 바스락대는 소리가 들린다.

푸른 꿈을 일구던 시절의 소회가 꿈틀거리며 회한들이 새어나오는 것이다.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환영들은 대체로 아쉽고 허무하고 실패한 것들이 더욱 집요하다.

 

 

또 이렇게 한 해가 가고 오는구나!

마당 어귀에 불자리를 만들어 낙엽들을 태운다.

불기운이 닿자마자 순식간에 불길로 솟구치며 재가 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경건해진다.

 

그 잠깐의 불 쏘시개로 일생을 종결하는 낙엽의 연기를 맡으며 이 겨울에는 더욱 깊어져야 하리라.

타고난 재를 땅에 묻으며 지난 시절의 영화보다 새로운 시절의 꿈을 꾸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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