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때가 되었구나.
오전 내내 텃밭에서 호작질 하느라 시장기가 느껴진다.
아직은 어린 상추 잎 몇 장, 돌나물 한 줌에
향기 가득한 제피 잎 여린 순 한 줌에 표고버섯 한 개로 식사 준비를 한다.
된장을 보글보글 진하게 끓여서 이 채소와 함께 비빔밥을 만들자.
모두 여기서 나온 것들이고 그저 얻어지는 것들이다.
가장 자연인다운 조촐한 한 끼의 식사에 만족한다.
이 검박한 식사를 끝내고는 채근담 몇 쪽 읽어나 볼까.
죽기 전에 먹어야 할 음식 100가지가 있다며 난리법석들인 세상이다.
사람들은 얼마나 사는 일이 힘들면 저런 데서 위안을 구할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간에 오가는 대화가 고작
이 도시에서 가장 먹을 만한 식당과 메뉴에 대한 정보 교환인가?
문득 나는 도시와 문명의 건너 편 호숫가 벤치에 앉은 고독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밤이 되면 더욱 휘황찬란해지는 도시와 문명의 빛!
그 반대편에 서려는 철학자처럼, 시인처럼 도도해지고 싶다.
저 건너편에는 산업자본주의 세상이라네.
사람들은 낮에는 자본주의가 길들인 반노예 상태의 삶을 살고 있지.
산업자본주의가 켜놓은 집어등 불빛을 따라 몰려드는 가련한 물고기들
소비와 향락을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는 군상들
희랍의 철인 디오게네스를 생각한다.
빈 술통에서 기거하며 행인들이 던져주는 음식으로 끼니를 이어가며
알렉산더의 권력마저도 부러워했던 무소유의 삶
문명의 건너편에서 조롱하며 기행으로 독특한 삶을 제시했던
2천 년 전의 철인을 생각한다.
이 소박한 식사가
나를 깊은 사색에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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