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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의 즐거움

풀벌레 우는 밤에

  

여름 밤 뜰이나 농로를 거닐다 보면 밤공기에 배어나오는 풀벌레 울음에 발걸음을 맘춘다.

은둔의 악사들은 제각기 풀섶이나 돌틈 사이에 편안히 자리를 잡고 소리의 향연을 펼친다.

아! 가을이 오는구나.

계절의 전령은 더위에 지친 우리를 위로하며 새 계절의 도래를 전한다.

 


우리 귀에는 가장 아름답게 들리는 소리는 단연 귀뚜라미의 소리다.

네박자로 우는 안락귀뚜라미는 도도도도’, 극동귀뚜라미는 기뚤기뚤이어서 울고,

왕귀뚜라미는 뚜르르르저마다 울음소리가 다르다.


 

쌕새기도 베짱이도 꼽등이도 여치도 가을 콘서트의 협연자다.

저마다 독특한 음색과 멜로디를 가진 연주자들이다.



 

귀뚜라미는 제 몸이 악기다.

날개의 섬세한 조직은 현악기의 현이다.

날개는 연주자의 손처럼 현을 진동시켜 청아한 소리를 낸다.

어떤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그리도 빠르고 일정하게 진동을 일으키랴!

어떤 악기 소리가 저리도 맑고 애잔하게 마음을 파고들랴!

 


온도 변화에 민감한 귀뚜라미는 <가을의 콘서트>에 전속된 악사다.

다가올 가을에는 살아있는 것에 대하여 최상의 기쁨과 환희를 찬미한다.

불과 두세 달 밖에는 노래하지 못한다는 제 운명을 아는지

절절한 소리로 감상과 애수에 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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