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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씨감자를 심으며

 

 

토지는 가임의 여신이다

어머니의 태반처럼 부드럽고 촉촉하다

농부는 경건한 마음으로 예신께 무수히 절을 한다

여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뭉친 덩어리를 풀어주고 돌멩이들을 추려내며 경배한다

허리가 아프고 전신에 기력이 떨어지지만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희생이다

대지의 여신은 자비로워 농부의 땀과 손길을 기억하며 후히 보상한다

 

감자를 심는다

정성이 담기지 않으면 받지 않으니 고냉지에서 보관한 순결한 씨감자를 예물로 드린다

씨눈을 품은 감자를 정화수에 목욕한 칼로 도려낸다

행여나 단면에 상처가 덧날까봐 참나무 장작을 태운 재로 소독하며 무탈하기를 빈다

 

뿌리는대로 거두게 하시는 정의로운 여신이여!

지성을 다하지 않는 게으른 농부에게는 흉작으로 훈육하시고

참되고 근면한 저 농부의 땀과 정성은 백 배로 보상하소서

 

자비하신 여신이시여!

씨를 받은 대지의 가슴이 훈풍에 데워지고 봄비에 촉촉히 젖어

어린 싹이 튼튼히 자라게 젖을 물리소서

완고한 농부의 마음을 열어 천지의 여러 기운이 좋은 인연으로

 감자알이 맺고 커짐을 알게 하소서

 

여신의 자비로움으로 큰 보상을 주시듯이 풍성한 소출을 나누게 하소서

한 알의 감자를 어물게 하기 위해 작용한 신비를 어렴풋이 깨닫게 하소서

이웃과의 작은 나눔에서 기쁨이 샘솟게 하시고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을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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