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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묵정밭 개간

우리 집 입구에 빈 밭이 있다

주인은 멀리 있고 가꾸던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시고 몇 년을 묵은 밭이다

 

묵정밭에 터를 잡고 생의 여정을 시작한 여러 풀과 나무들은

자연의 순리대로 치열한 생존경쟁을 한다

결국 최후까지 살아남는 것은 대나무와 칡이다

어찌나 활개를 치며 왕성한 기세를 떨치는지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텃밭으로 삼으려는 이가 없다

 

요 녀석들은 무주 공산을 점령하여 세력을 확대하는

제국주의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어찌나 기세가 강한지 몇 년을 방치했다가는 농경지는 커녕

중장비로 토벌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되고 만다

 

 

 

 

올 봄의 보람있는 사건 하나를 든다면 이 밭을 텃밭으로 만드는 일이다

5일간의 분투로 대나무와 칡을 캐내고 묻힌 돌을 추려내어

30평 정도를 밭으로 만드는 중이다

 

이 보람있는 사건을 나는 올 봄의 업적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내 근력과 의지로 만든 밭이기에, 쉽게 작업하기 어려운 조건이었기에

수반되는 성취감과 기쁨이 솔솔하다

 

남들이 볼 때는 별 일도 아닌 사소한 일에 불과할 뿐이다

그까짓 일이야 중기 작업을 하면 반나절 작업도 안된다며 시큰둥하겠지만......

 

내 가치 기준의 우선 순위는

스스로 하기, 경제적으로 환산하지 않기,

돈을 가급적 적게 들이기,

작업 과정도 결과못지 않게 소중하게 여기기이다

 

나는 밭을 개간하면서

근육이 분출하는 힘의 한계치를 경험하면서

노동이 삶의 원천적인 기쁨임을 깨달으며

노동의 본질적 의미를 사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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