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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걸리기만 해봐라

감을 딴다
감을 따는 수공구도 진화를 한다
예전에는 대나무 장대 끝을 벌려서 그 틈새로 가지를 넣고 꺾어서 땄었는데 요즘은 접이형 알미늄 장대 끝에 철사로 W자 모양을 한 주머니가 보급되어 인기가 있다
과수원에서 전지한 감나무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자란 감나무는 수고가 꽤 높아 따기가 수월하지 않다
사다리를 걸치고 장대 길이를 최대한으로 늘려도 장대 끝이 닿을락말락한 경우가 좀 많은게 아니다

감을 따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사다리 위에 선 불안정한 자세로 머리 위 목표물을 향하는 뒤로 젖힌 목의 통증과 장대 끝 주머니의 무게로 인한 팔의 통증을......
그러나 감을 따는 과정을 상세히 살펴보면 경험자들도 간과하는 부분도 있다
W자 걸이에 감이나 가지가 수월하게 걸려들지 않는다 감이 가지 뒤나 옆으로 슬쩍 돌아서 있거나 장대를 뻗치는데 전선줄이나 나뭇가지가 방해를 하거나 배수로가 있어 사다리를 놓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사다리 위에서 어정쩡 불안정한 자세로 장대 끝이 닿으락말락한 장대를 떠받친 팔의 완력은 몇 초만에 한계에 이르는데 감이 씽긋 웃으며
"나 잡아봐라"한다
약이.오른 나는 감을 노려보며 단단히 벼른다
"요것이...걸리기만 해봐라"
"걸리들기만 해봐라"
잡으려는 W자 걸이와 피하려는 가지 사이에 밀고 당기는 공방이 오간다

이렇게 팽팽한 긴장과 스릴이 있는 순간이 지나고

 

'척'

앗싸! 걸려들었다
휙 잡아 당기는데 장대 주머니가 묵직하다
과녁에 명중한 궁수처럼 사냥감을 손에 넣은 포수처럼 온 세상을 손아귀에 넣는다

이래서 감 따는 일은 노동과 유희(놀이)의 경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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