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앙상한 뼈마디에 박힌 오한에도
허리 곧추세운 선비처럼 꿋꿋하던 뜰 앞 벚나무가
降神하는 무당이 되던 날
이파리들은 방울 소리로 떨어져 내리고
소매 끝에 걸린 잔가지가 격렬하게 너울거리더니
팔이 부러지고 허리가 꺾이며 오열한다.
나를 할퀴고 짓밟았던 태풍
애련한 꽃잎 같은 살붙이들을 떠내려 보내고
세월의 강 한 켠에 남겨둔 잔영에 몸서리치던
그 날처럼
2003년 태풍 매미 때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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