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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두봉 - 경계를 뛰어넘다

방금 전 TV 방송에 두봉 주교가 출연한다 마을 회관에 가서 주민들과 어울린다 화투를 치자는 할머니들의 제안에 화투는 칠 줄을 모른다며 구경을 하고 윷놀이판을 벌이는데 모가 나오자 덩실덩실 춤을 추며 즐거워 하는 모습이 꾸밈없는 어린이다
스님들과 대담하는 모습도 나온다
95세 은퇴 사제인 두봉 신부는 외국인이면서도 가장 한국적인 사제로서 모든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
그분은 노인이면서 동시에 어린이 같은 순수한 심성이 말씨와 웃음에 그대로 나타난다
그분은 주교라는 천주교의 고위급 사제이자 근엄한 성직자이면서도 이웃집의 재미있는 할아버지 같은 인상을 준다

아! 이분은 경계를 즐기시는구나
국적을 넘어, 종교를 넘어, 신분을 넘어, 나이를 넘어 존재하는 분이로구나
그 뿐만이 아니다 말씀 중에 죽음까지도 하느님을 뵐 기쁨의 날로 받아들이는 걸 보니 생과 사를 넘어선 것이다

마침 노자를 읽다가 그가 말하는 성심( 成心 구성된 마음)이란 개념이 툭, 내 사유를 자극한다 성심이란 어떤 공동체에서 태어나 생존하기 위해 내면화된 마음가짐이다
두봉이 26세에 선교사로서 이역만리 타국으로 떠나는 결단은 삶의 문맥이 대전환되는 하나의 사건으로써 두봉 주교의 파란만장한 대하드라마의 도입 부분인 것이다
두봉은 예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난과 전쟁의 상처로 고통받는 한국이란 나라에 파견되어 희생과 봉사의 삶을 자청한 것이다

한국이라는 낯설고 이질적이고 심지어 적대적인 타자 앞에서 본분을 수행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내면화된 기존의 성심을 버려야 했다
프랑스 청년 두봉이 가족들과 이별하고 익숙한 말과 관습과 결별하고 낯설고 불편하고 어렵기만 했을 한국인으로의 변신을 이루 헤아릴 수 있으랴 파란 눈의 이방인이 아니라 진정한 한국인으로 녹아들기 위해 쏟았던 노력의 흔적이 현재의 말과 행동에 담겨 있다

장자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특정한 삶의 문맥에 처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지인과 범인의 차이는 특정한 삶의 문맥에서 형성된 성심을 어떻게 새로운 삶의 문맥에서 적용하느냐의 유연성에 따른다는 것이다
지인은 물처럼 유연하고 유동적으로 타자나 새 사태에 적용하지만 범인은 얼음처럼 굳어 있는 고착된 자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두봉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기 위해
프랑스인으로서의 삶의 문맥에서 형성된 성심에 고착되지 않고 한국이란 나라와 한국인이라는 낯선 타자와 소통하기 위해 새로운 성심으로 부단히 변화해 온 것이다
그는 선교사로서 사제로서의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나깨나 기도하며 이웃을 섬기며 사랑을 실천하였다

눈빛이 형형하고 맑아 순진무구한 어린이 같은 두봉은 주교라기보다는 이웃집 할아버지 같다
경계에서는 꽃이 핀다더니 그 꽃이 두봉의 얼굴에서 웃음으로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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