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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의 즐거움

햇볕을 쬐며

동남향 주택이라 창문으로 볕이 들어오는
시간은 9시가 넘어서다
하천 너머의  산이 볕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산을 원망한 적은 없다
산이 먼저 자리를 잡았고 산이 자의적으로 볕을 가리는 것이 아닌데다 산이 사계의 정취를 담아내는 거대한 스크린이기 때문이다

요즘 참나무 땔감을 아끼려 난롯불을 피우지 않아 아침 햇살이 님보듯 반갑다
그런데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댓평 방에 골고루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이다
오늘은 안락의자를 볕이 드는 곳으로 이동을 시키며 햇볕욕을 한다
가벼운 일인용 의자라 편리하다
기품있는 비싼 의자가 아니라서 가능한 일이다
조금 후에는 약간 옆으로 이동 시키면 볕을 더 쬘 수 있다

의자를 이동 시키며 클래식 음악 채널로 바꾼다
나는 해바라기처럼 볕을 향해 조금씩 돌아간다


홀연히 하나의 관념이 뇌리에 떠오른다
아장스망이라는 들뢰즈의 개념인데 배치라는 뜻이다
동남향의 집과 창문,  앞산을 넘어오는 태양, 안방의 의자에 앉아 사색하는 나는 내 삶을 구성하는 여러 사물들의 배치다
의자에 앉아 TV를 시청하며 커피를 마시는 평소의 배치에 작은 변화가 있다
이런 작은 변화는 일종의 사건이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배치는 색다른 사유를 위한 출발점이다
배치를 변화함으로써 이전과 전혀 색다른 우연적인 상상을 하고 그만큼 내 삶이 변화되는 것이다

희랍의 철인 디오게네스가 연상된다
알렉산더 대왕의 제시한 현실의 유혹을 뿌리치고  안분자족의 평정심을 실천한 철인의 지혜를 배운다

작고 소소한 일상의 가치에 집중하는 기회가 된다 의자를 옮겨가며 볕은 추종하는 행동은 마음에 욕망들이 가라앉아 차분하고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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