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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옥수수 뻥튀기



재래 시장 구석진 골목의 뻥튀기 가게에서 터지는 폭발음
무심코 걷던 행인 몇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가슴을 쓸다가 이내 웃음으로 전환한다
이 단발의 대폿소리와 자욱한 연기가 어릴 적의 추억계를 소환하는 타임머신이 되어 훈훈해진다

손잡이가 달린 동그란 뻥튀기 기계에 들어간 강냉이 한됫박이 가열하는 솥에서 빙글빙글 돌아간다
내 물조리개로 석달동안 샤워하며 매일매일 키를 키운 알갱이들이 열달동안이나 물기를 죄다 말리고 온 몸의 구석구석이 달구어진다

십분이나 될까말까한 달구어짐은 한 순간의 폭발을 준비하는 전희다
강냉이 알갱이들이 달아오르는 솥에서 서로 몸을 비비며 위아래로 자세를 바꾸며 전생의 추억들을 회상한다
여름의 뜨거운 태양에 일광욕을 즐기던 일이며 누가 더 키기 큰지를 경쟁하며 발돋움하던 일이며 아침마다 돌아보던 정영감의 발자욱 소리를 기다리던 일들이 꿈결처럼 파노라마처럼 스쳐갈테지

이윽고 불통이 철거되고 영감님의 결연한 표정으로 줄을 걸고 대포의 공이를  잡아당긴다
격정과 환희는 한 순간으로 축약된다
그것은 엄청난 소리와 연기로 발산한다
그것은 출산의 신비와 고통과  영광으로 이어진다
연기가 걷히고 폭발음의 진동이 귓전에 완전히 사라지기도 전에 길쭉한 철망으로 쏟아져 들어온 옥동자들이 뿌연 얼굴에 젖냄새로 향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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