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심는 날

모종심기 좋은 날이다
이제 입하가 가까운데다 온종일 흐리고 내일은 비가 제법 온다니 안성맞춤이다
오늘은 고구마를 심는다

농부는 날을 잘 잡아아 한다 농사란 것이 하늘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시기를 잘 포착하는 일이 농자의 기본이다
일기는 늘 순조롭지 않다 큰 바람과 서리, 폭우와 폭설,이상기온 등의 의외의 변수가 있어 오랜 집단의 경험으로 대비한다 24절기도 그런 맥락에서 이루어진 집단 지성이요 경험의 총체다

고구마순을 사온지 일주일이 지나 일기예보를 보고 오늘을 디데이로 선포한다
100포기짜리로 석단을 심는다 가까이 물이 있어서 충분히 물을 주고 흙으로 덮어주며 입가에 미소가 흐르고 가슴이 뿌듯해진다
일이 어찌나 즐겁고 재미있는지 쉬는 시간이 아깝다
힘든 일을 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밭놀이에 생명증식 운동이다
허리를 굽히는 것은 고역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봉헌이라 고통 뒤에 기쁨이 뒤따라 온다
능률을 생각해서 빨리 끝내려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놀이를 오래하기 위해 천천히 한다
고구마순을 심는 도구를 시장에서 이천원에 살 수 있지만 고추 지지대를 그라인더로 약간 손질하니 기성품 못지 않다
고구마순에 있는 마디의 실뿌리에게 은근히 부탁을 한다
충분히 물을 먹고 잘 활착해서 한 뿌리에 주먹만한 실한 놈 두 개만 달리면 좋겠네

일손이 빠른 사람들이라면 오래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루 종일 한다
이제 며칠동안 고구마순이 잘 자라는지 살펴보는 재미가있을 것이다 볕에 순이 말라 죽지 않고 생기를 회복하는 모습을 하루에도 한두 번은 꼭 내 눈으로 확인할 것이다

내가 심은 고구마는 한 상자에 얼마씩 돈이 되는 상품이 아니다
고구마의 한 생애를 지켜보며 조력하는 생명의 파트너십이 이루어질 의미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