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곡의 글방

이국의 모자

모자는 신분이나 역할의 상징이다 갓을 쓴 제관, 모자를 삐딱하게 쓴 예비군인, 베레모를 쓴 특수부대 군인, 검정 교복에 교모를 쓴 까까머리 중고생, 힙합 모자를 쓴 젊은이, 중절 모자를 쓴 신사........이루 열거하기 어려울만큼 모자는 생활에 밀착된 필수품이고 패션이고 상징이다

칠 팔년 전 베트남 여행 중에 1달러짜리 모자를 지금도 애용하고 있다  턱에 거는 끈이 닳아서 떨어졌지만 고무줄로 보수하여 앞으로 몇 해는 충분히 사용할 것 같다
세상에 이리도 멋지고 값싸고 편리하고 사랑스런 모자가 있다니........
사람들은 '가성비가 좋다'는 표현을 제품 사용 후기에 많이 사용한다 시장에서 가격 대비 성능의 효율성을 일컫는 용어인데 그런 점에서도 탁월하지만 나는 민예품으로서의 가치를 주목한다

천원짜리 일회용 싸구려 모자로 바라보는 천박한 안목에서 벗어나게 한 사건은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일본의 미학자를 접하면서다

번뜩이는 감성과 탁월한 재능으로 창작한 천재 예술가의 특별한 작품만이 예술품이고 진정 아름다운것인가?
예술가 반열에도 들지 않는 민간 공예인들 만든 일상용품에는 아름다움이 없다는 것인가?
이런 의문에서 무네요시의 민예품 예찬론이 기반하고 있으며 조선의 예술과 민예품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미학자를 존경하고 있다

내가 밭에 나갈 때 논라를 즐겨 쓰는데 가벼운데다 감촉이 좋고 햇볕을 잘 가려주기 때문이다 현지인들은 논라가 비가 내릴 때 많이 쓴다는데 그 점은 나와 다르다

실용적 가치만이 아니다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지만 잘게 빚은 대나무로 골조를 만들고 여러 나뭇잎을 골조 사이에 엮어 줄로 고정하는 숙달된 손놀림과 평온함을 감지하며 이국의 공예품에 대한 존중과 찬사를 하는 것이다

그 지역에서 가장 흔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수많은 공인들의 누적된 경험과 기능으로 완성된  작품이 일상용품으로 사람들의 실생활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민족주의적 알량한 자존심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일본의 많은 국보들이 식민지에서 수탈한 조선의 예술품이거나 조선의 도공들의 손에서 빚어진 것임을 인정하였기에 그 분을 존경하듯이 이국의 민예품인 논라에도 애정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내 일상용품으로 애용하고 있다

'청곡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친의 제사를 모시며  (0) 2023.06.25
무늬비비추  (0) 2023.06.25
깃발  (0) 2023.06.15
초롱꽃이 피어나고  (0) 2023.06.09
꽃의 미로  (0) 2023.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