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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고택의 나무 절구통

어느 고가의 처마 아래 나무 절구통 하나

한 아름이 넉넉했을 인근 야산의 소나무가 대갓집 세간살이로 들어와 그 많던 식구들 음식 바라지하느라 애를 많이도 썼겠다
공이로 절구바닥을 쿵쿵 내리치며 땀을 훔치는데 담장 너머로 그 신명이 흥겹더니 어느 적부터인지 일감도 줄고 모퉁이로 밀려나 하품만 하며 추억에 잠기는구나

나무좀벌레들이 구멍을 뚫고 공이 안에 제 집을 짓고 있는데 옛 주인 아호가 일두(一蠹)라 하여 크윽크윽 한 바탕 웃음을 짓고

명실이 부합하지 못하다 탓하지 마라
한 시절 그 많던 식구들 바라지 하느라 닳아빠진 공이와 짓눌린 바닥의 시퍼런 멍을 훈장으로 여기는 백살도 휠씬 넘은 노인장이 아니냐 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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