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곡의 글방

위대한 손

 

 

 전원 생활로의 삶의 반전

 

 서산에 해가 한참이나 남은 오십 중반에 교직을 퇴직하고 낙향하여 전원생활을 한지 세 해가 되어간다. 가만히 돌아보면 퇴직은 내 삶의 극적인 반전을 가져온 일생의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30년간의 직업생활에서 은퇴 생활로, 도시의 아파트 생활에서 농촌의 전원 생활로 변화된 것이다.

 

 

 전원 생활은 늘 적당한 일거리가 있기 마련이어서 텃밭을 가꾸거나 정원을 가꾸는 일들로 소일하는 경우가 많다.

밭에 나가 땅을 뒤엎고 메마른 대지에 신선한 공기를 씌우고 돌을 골라낸다. 대지에 젖을 물리듯 두엄을 듬뿍 넣은 후에 밭두둑을 지어 놓고 보면 가슴 뿌듯하게 다가오는 보람과 성취감이란................

 

정성을 다해서 소망의 씨앗을 뿌리고 고운 흙으로 덮어 토닥토닥여 놓고 기다리는 며칠. 드디어 조그만 싹이 새파란 정수리를 경쟁하듯 앙증스럽게 내밀 때의 오묘한 자연의 신비를 체험하는 즐거움이란...........

 

 

 요 몇 년 새 얼마나 많은 일을 하였는가? 내 일상을 건강하고 보람있게 한 최고의 도구인 내 손을 어루만지다 보니 퇴직을 고심하던 시기에 아내와의 대화가 언뜻 떠오른다.

“은퇴자의 전원 생활에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교단에서의 지식과 정보가 무슨 큰 소용이 있겠어요? 친분 있는 이들과의 왕래가 어찌 예전 같겠어요? 머릿속의 지식보다는 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일하면서 즐거움을 찾고 지인들과의 왕래보다는 자연과 소통하며 살아야하지 않겠어요.”

 

 

 그렇다. 손이다. 내 삶의 반전을 가져온 또 하나가 바로 손이다. 교단에서 주로 머리를 쓰며 가르치던 지금까지의 삶에서 손을 위주로 사는 전환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가내 수공업 즉 손을 주로 사용하던 전근대적인 생산 양식에서 공장제 기계공업으로 전환한 인류의 산업 혁명과는 역으로 가는 느낌이다.

 

 

 손을 바라보며 만지작거리며

 

 양손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비벼보다가, 열손가락을 폈다가 오무렸다 하면서 자유분방하고 민첩한 동작을 해본다.

엄지가 굳건하게 자리한 두툼한 둔덕으로 흐르는 실개천 핏줄이며 손등 마디에 박힌 세월의 옹이 같은 손마디를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어루만진다. 저마다 위치와 크기와 힘이 다른 손가락들. 부드럽던 피부가 조금씩 트고 손톱에 흙이 낀, 내 육신에 붙어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은 대견스러운 내 손이다.

 

 

 인체의 제일 말단에서 마치 3D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 같이, 사물과 즉각적으로 접촉하고 목적에 따라서 손가락 간에 긴밀한 협응을 재현하면서 이 아름다운 조각품, 신비로운 예술품에 찬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손가락들은 제각기 독특한 지위와 개성을 지니고 있지 아니한가? 그들은 철저히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들이다. 그러면서 공동의 목적을 위해서 힘을 합치고 철저한 역할 분담을 하고 그러면서도 개체의 개별성을 잃지 않는다. 유기체의 통합과 분화의 원리를 어느 새 깨닫게 된다. 독립적인 개체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삶 또한 그런 원리 안에서 조화롭고 행복한 삶이 될 것이다.

 

 

 손은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인체의 말단부에 있는 四肢임을 잘 알고 있기에 복잡한 고등 정신 기능을 수행하는 일 따위엔 관심도 능력도 없다. 그저 묵묵히 어떤 어려운 일어거나 힘든 일을 가리지 않고 수고를 하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때로는 고된 노역에 혹사 당해서 닳고 생채기나는 일이 잦은데도 말이다.

 

 

 손은 현장에서 오로지 활동하는 존재이다. 일을 계획하고 반성하는 일 등은 행동파가 하는 일이 아님을 잘 안다. 위임 받은 임무를 수행할 뿐, 그 목적의 타당성 여부에는 관심이 없다. 달팽이의 예민한 촉각을 가진 더듬이처럼 초음파로 어둠 속의 길을 찾는 박쥐처럼 손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첨병으로서 위험하고 어려운 일에 항상 앞장 설 뿐이다. 그래서 손은 재주가 많다. 다양한 기능, 민첩하고 유연한 동작을 수행하기 위해 다섯 조직원들은 저마다 세 마디를 가지고 있다. 펴고 오므리고 힘을 합치는 그 변화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용불용설에 의하면 개체나 기관은 사용하면 할수록 기능이 발달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적용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 분야에서 평생을 종사한 장인들은 손의 재주를 극대화 시킨 그야말로 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이 아니던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우수한 두뇌가 어려서부터 익혀온 수저질과 관련된다는 가설을 들은 적이 있다. 손가락 사이에 두 개의 젓가락을 끼우고 손가락과 젓가락 간의 고난도의 움직임과 힘의 적절한 분배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면 우리도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손은 민첩하고 근면한 노동자이다. 그리고 조직을 위한 충성적인 조직원이자 헌신적인 봉사자이다. 손은 우리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어촌의 농어민이나 도시의 근로자와 같은 기관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서 생산을 담당하며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는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충성파들이다.

 

 국가가 정의로워지기 위해서는 사람의 머리에 해당하는 통치 계급은 지혜를 가져야 하고 사람의 가슴에 해당하는 전사 계급은 용기라는 덕목을 가져야 하고 사람의 사지에 해당하는 생산자 계급은 절제해야 한다고 하였던 플라톤의 사유와 맥이 닿는다.

 

 

 손에 대한 예찬론에서 또 하나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손에는 음양오행의 축소판이라는 점이다. 손등은 단단하고 굳은 형상으로 외부로 향하고 있으며 유연하고 부드러운 내부를 보호하지 않는가? 원래 사물의 말단부는 닳아지거나 다치기 쉬운 터인데 손가락 끝마디의 손톱은 그런 점을 최대한 보완하고 있으니 인체의 구조란 가히 신의 작품이 아니던가?

 

 

 보라. 손가락은 제각기 안으로 굽어져서 손바닥에서 세상만사가 이루어지지 않는가? 그런 어머니 같은 유연한 손바닥을 보호하기 위해 손등은 단단한 뼈로 이루어진 아버지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다섯 손가락은 또한 오행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그래서 수지침 침술에 의하면 손 구석구석은 모두 인체의 오장에 연결되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우주 만물의 생성과 소멸과 변화에 대한 원리가 인체 내부에 축약되어 있고 음양오행의 축소판이 손에 있으니 놀랍고 신비스럽지 아니하던가? 손바닥에 그어진 손금에 그 사람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일을 단순한 재미로만 보기에는 그 학문의 역사성과 체계성을 소홀한 것이 아닐까 한다.

 

 

 노동은 즐거움의 원천

 

 우리는 대부분의 노동을 손으로 한다. 노동은 인간의 정신을 정화 시키고 삶을 윤기 있게 빛낸다는 삶의 진리를 노동함으로써 깨달을 수 있다. 밭에서 땀을 흘리며 대지의 부드러운 흙내음을 맡으며 김을 매본 이들은 생생한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리라.

 

수도승이나 수도자들의 일과에 육체 노동이 중요한 한 부분이 됨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폐쇄 수도원에서는 하루를 삼등분하여 기도하고 노동하고 의식주의 생리적 활동으로 나눈다고 들은 바 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고 하였던 고전과 성인들의 警句가 있다.

그런데 요즘은 물질 문명의 풍요로움 속에서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으로 굳이 일하지 않고서도 생계가 보장되는 경우 또한 적지 않아 이런 경구가 무의미해 진 것인가?

 

 농사랄 것도 없는 텃밭 농사지만 씨앗값이며 비료대, 각종 자재비, 부대적으로 소요되는 교통비 등 투입한 자금과 노력에 비해 턱도 없는 소출로 경제적 효용 가치가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땀흘려 일한 과정에서 얻어지는 정신적 즐거움과 성취감이 적지 않았다. 공학적 표현을 빌면 인풋과 아웃풋을 결정하는 요소가 꼭 경제적인 가치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잔디밭에서 잡초를 뽑아내는 가치를 경제적 기준으로 환산하기도 어려우려니와 아침 이슬을 머금은 잔디밭에서 얻은 여러 상념들은 내 사유의 폭과 깊이를 더해 주기도 하였고 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한 방편이 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인적 품성을 함양하기 위해서도 노동의 가치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의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 운동으로 4H운동이 언뜻 머리에 떠오른다. 머리와 가슴과 손과 건강으로 지덕노체를 통해 건강한 삶과 건강한 사회 발전을 이룩하려는 이 운동에 깊은 공감을 한다.

 

 

 새마을 운동에서 강조한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이나 가나안 농군학교의 창설자인 김용기 목사가 부르짖었던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괭이’라는 슬로건 또한 노동의 가치를 강조하는 사회 운동인 것이다.

이러한 사회 개혁 운동은 한 시절 우리 사회의 근대화를 위한 시대적 유산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나와 우리 사회에 유효한 개혁 운동이 될 수도 있으리라.

 

 

 나이가 들어 사심 없는 맑은 마음으로 보면 세상의 이치, 자연의 순리를 포착하게 되는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대체로 오십 전후가 되면 돋보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눈이 노안으로 변질된다고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 신호를 긍정적으로 해석해 보면 자연이 보내는 메시지인 것이다. 작은 활자로 인쇄된 디테일한 지식이나 정보는 눈이 밝은 젊은이들에게 물려주고 이제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그들이 보지 못하는 먼 산의 전체적인 모양, 산 너머의 세계를 바라 보리라. 그 나이가 되면 사실에 눈이 밝기보다는 원숙한 통찰을 가진 혜안으로 전환하라는 신호라고 보면 안될까? 귀도 마찬가지이다. 남의 말을 듣고 내가 내 입장에서 가치 판단을 하다보면 귀에 거슬리게 되는 법인데 이제 이런저런 소리에도 적당하게 귀가 순해져야 하는 법이지. 상대의 말을 내 주관으로 판단하지 말고 말하는 이의 입장에서 들어라는 자연의 교훈이 아닐까 한다. 공자님 말씀에 나이 예순에 이순(耳順)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은 윤기 있고 길고 흰 손이 아니라 평생 온갖 잡일로 거칠어진 노인의 손이라는 동화가 생각이 난다. 인생 경력이 손가락 마디에 쌓이는 것인지 해가 갈수록 마디가 굵어지고 탄력을 잃어가는 잔주름이 늘어가는 내 손! 예전에 비해서 신속함과 정교함을 조금씩 잃어가지만 전원에서 사는 예비 노인인 나는 머리보다 손을 더 많이 쓸 일이라고 다짐하기도 한다.

 

 

 아직도 건재한 이 손은 내 대부분의 일상생활에 요긴하게 사용될 것이고 때로는 내 삶을 조금이나마 아름답게 하는 목공 작품 활동에도 요긴하게 활용될 것이다. 그로 인해 내 삶은 조금씩 변화되고 발전하리라.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은 어떤 존재보다 우수한 문명과 문화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요즘이야 컴퓨터, 스마트 폰 등 디지털 도구가 판을 치고 있지만 우리의 유년 시절은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아날로그적 도구 시대였다. 배고프고 물자가 귀했던 그 시절, 그 어린 손에서 만들어지는 딱지며 얼음 썰매, 고무줄 총 등이며 구슬치기, 자치기 놀이 등은 얼마나 우리의 어린 시절을 얼마나 주체적인 인간으로 낭만과 행복의 나라로 인도한 것인가?

 

 

 네델란드의 호이징거는 ‘호모 루덴스’ 즉 유희하는 인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취미는 삶의 양념이라고 생각하여 시작한 목공예는 차후 내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어른이 좀 품위있고 가치 있게 노는데 꼭 필요한 장난감이 무엇인가 하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어른 장난감으로 최고가 바로 연장이다. 벌써 연장 창고에 늘어가는 연장들, 주로 목공용 연장들이다. 나무를 켜고, 깎고, 파고, 붙이고, 칠하는 나무쟁이로 살아갈 것이다.

 

나무 다듬는 작업에 열중하다 보면 비록 겉으로는 먼지와 소음과 힘든 노동이지만 고도의 집중과 몰입을 통해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단순한 작업이지만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수행자로서의 선적인 경지를 살며시 체험하기도 한다. 생활 속에서 맛보는 일상선이라고나 할까?

 

 

나는 손처럼 살아가리라고 다짐한다. 일하면서 작은 즐거움을 찾을 것이다.

나는 손처럼 살아갈 것이다. 내 삶을 윤기있게 해주는 삶의 일터인 밭이나 목공 작업실 바로 그 현장에 나가서 땀을 흘리며 일할 것이다.

나는 손처럼 살 것이다.

오늘 하루를 값지게 살고 작품을 창작하는 노작 활동을 통해 땀 흘려 얻는 행복을 이 두 손으로 만들어가리라.

 

 

 위대한 손이여!

'청곡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내의 돋보기  (0) 2010.12.22
벌초  (0) 2010.11.04
진순이와의 이별  (0) 2010.11.03
鄭庸 義士를 기리며  (0) 2010.10.17
결혼식장 스케치  (0) 2010.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