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地人 共怒한 저들의 임진년 만행에
農山村 義人의 부릅뜬 눈으로
怒濤 같은 義憤을 움켜 쥔 주먹으로
지샌 밤이 어디 며칠이랴.
國祿의 빚이라도 있거나 孑孑單身이었거나
이름 석자 떨칠 豪氣로운 영웅이었더라면
가야할 십자가 외길에서 머뭇거리지나 않았으련만
조카 둘 데리고 동지들과 규합하여
정의의 이름으로 하늘에 맹세할 때
이미 제단 위에 바쳐진 희생은 님의 목이외다.
늙고 쇠잔한 맨 몸뚱이에
걸친 건 쇠보다 강한 충의의 갑옷
天命으로 무장한 정의의 칼 한 자루
하늘의 뜻을 어찌 알리오!
진주성에 阿鼻叫喚으로
鮮血 샛강처럼 흐르던 날
五臟六腑에 남은 기력 죄다 쏟아내고
矗石 아래로 장렬하게 떨어지는
대장부의 꽃 한 송이
(정용 의사는 임진왜란 당시에 경남 거창에 거주하다 당시 50중반의 노령에도 조카 둘을 데리고 참전한 저희 가문의 조상입니다.
진주성에서 교전 중 최후의 순간에 조카들과 함께 남강 촉석 아래로 투신한 분입니다.
함양군 황암사에서 정유재란 때 황석산성에서 전몰한 영령들을 제향하는 곳에 의사의 위패를 모시고 음력 8. 18에 나라에서 제향을 올린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