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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비오는 날의 사색

비가 내리며 오월도 늘 화창하고 눈부시지만은 않다고 한다
바짓 가랭이를 접어 목이 긴 양말 속으로 넣고 우산을 받치며 뜰에 나선다
밭에 심어둔 여러 모종들이 이주에 메마른 목을 적시며 원기를 회복한다

온통 푸른 것들에 둘러쌓여 있다
초록은 생명의 표정이고 빛깔이고 의지다
초록의 더미에서 홍염을 지피던 영산홍도 차츰 낙화하며 붉은색을 지우고 원래로 되돌아간다
초록 세계를 만들려고 자연은 붓과 물감을 사용하지 않는다 땅에다 붓을 심고 입김을 불어 넣으니 나무가 된다
붓에서 숱한 가지들이 솟아나고 햇빛과 바람과 구름이 물감이 되어 초록의 마법을 시작한다
잔디밭에 집중을 하니 온갖 풀들이 정수리를 내밀고 있다

살려는 의지들로 충만하다
연약한 풀의 허리가 스프링처럼 탄력이 솟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다양한 풀들이 제 종을 대표하며 당당하다
저마다 천의 뿌리를 갖고 지하세계를 탐험하며 천의 손을 뻗어 창공으로 뻗어나간다
빗물에  잎사귀들이 젖고 땅 아래 뿌리들이 흥건히 젖으며 녹음이 한결 짙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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