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의 <유재>라는 현판을 며칠 째 보며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정신을 천천히 음미한다
추사의 천재성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독창적인 글씨의 맛을 느껴보기도 한다
명작을 감상하다가 뜻이 닿으면 직접 모작을 해보기도 한다
유재라는 글은 남겨두는 집이란 것인데 한 마디로 다 하거나, 다 쓰지 말고 남겨두라는 뜻이다
소인배들은 하나에 빠지면 집착하고 탐닉하여 끝을 본다
그러나 대인들은 중용의 도리를 취하며 조화를 도모한다
한없이 기쁠 때도 또 모를 슬픈 일을 생각해 웃음을 아낀다 그 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밥을 먹을 때도 배를 가득 채우지 말고 수저를 내려놓는 절제의 정신이 담겨있다
어느 영화에선가 여배우가 행복한 순간에 눈물을 흘린다 그 시간이 다하고 나면 다가올 평상심, 행복의 순간은 길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기쁨과 슬픔, 배 부름과 배 고픔, 낭비와 인색, 행복과 불행은 항상 대응하는 짝이 있다
좋은 일만 있으라는 축원은 의례적인 의미일 뿐이다
사랑하는 연인들 간에도 부모와 자식 간에도 갈등이 생기고 다툼도 있을 수 밖에 없다
내 안에 빈 자리, 즉 여백의 자리를 두라는 권고이기도 한다
자신만이 아니고 함께 살아가는 타인을 위하는 큰 마음은 이런 여백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 삶의 구체적 현실에서 대응하는 지혜가 드러난다
양극의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과 조화로움이다
청곡의 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