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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의 즐거움

텃밭의 독백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텃밭에 나간다
나를 반겨주는 푸른 생명들이 어제처럼 그리고 오늘에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내가 그들을 반기듯이 그들도 내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반가워한다

목 마르지?
어디 보자
어제보다 자랐나?
실은 이전과 다른 차이를 찾아내고 그 차이를 통해서 노동의 근원적 가치를 느끼게 된다
우선 물을 주어야겠지
습관적으로 물조리개 두 개에 가득 물을 받아 블루베리, 토란, 토마토, 오이, 가지, 호박, 야콘에게 물을 준다
물조리개  4개 분량으로 골고루 나누어 주며 시혜자의 흐뭇한 미소를 띤다

이제는 토마토 두둑으로 가볼까 고작 열 포기도 안되지만 엄연한 토마토 밭이다
어디보자
한 뼘 남짓하던 토마토 모종이 내 키만큼 자랐다
우와♡
열매를 매단 송이 하나가 새로 생겼네 몇 개를 매달까?
어제보다 제법 굵어졌는걸
빨갛게 익으려면 며칠 더 걸릴까 바라보는 눈길이 호기심과 득의양양한 미소로 변한다
사나흘 전에 지주에 끈으로 묶어주었는데 오늘도 새로 자란 어미 순을 묶어주고 곁가지를 떼낸다 쓸만한 겉가지 몇 개는 따로 화분에다 심어 뿌리를 내리는 삽목을 한다


이제는 호박 심은 두둑으로 가볼까
요건 일본 단호박이라는데 작년에 히트 친 셈이지
하하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는 말라고
자기만의 기준으로 자화자찬할 뿐이니까
유튜브 선생님들이 가르쳐주는 순자르기 기술을 배워 일곱 마디에서 어미순을 자르고 아들 순 두 개를 기르고 있지 오늘은 잘라낸 순에서 딴 호박잎 몇 장을 쪄서 먹어아겠어
호박잎을 따고 간단히 쪄서 입으로 들어가는데 걸리는 시간도 좋은 음식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니까
내가 애용하는 말이지만 입에 들어가는 음식의 재료가 어디서, 언제, 누가, 어떻게 자라고 이동하였는지가 중요한 것이지
나는 방금 딴 이 호박잎 몇 장의 전 생애에 관여한 유일한 사람이지
떡잎이 나기 전부터 구덩이를 파고 퇴비를 묻고 내  땀과 기대감도 묻고 , 새 잎이 나올 때 미소로 맞이하던 호박잎이지  조리법이 단순하여 일류 요리사가 만든 것에 비해 보잘 것 없지만 새로온 기준으로 보면 평가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지
하하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내 생각일 뿐이니까


다시 고추 두둑으로 오이와 가지 두둑으로....
이렇게 호작질을 하면 한 시간이 금새 가버릴만큼 신나는 텃밭 농사다

내가 하는 이 일의 과정은 아이들 호작질 수준에 불과하지만 놀라운 것은 기쁨과 즐거움을 준다는 점이다 내가 밭에서 얻는 채소와 열매의 수확물만이 아니다

방송에서 언뜻 보았지던 고급 실버타운(매입 0억, 보증금 0억에 월 0백만원)에서 누릴 수 없는 삶의 기쁨이다
사회의 중심부가 이끌어가는 문명의 주류를 따르라고?
웃기는 말씀 작작 하시오 나는 이미 그런 것을 해체하고 전복하는 사람이오

자본주의 사회, 시장 경제의 논리만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란 것이 내 소신이다 그런 소신은 다행히 충분히 입증되고 있으며 보상을 받고 있다며 독백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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