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니아가 마르는 중이다
본체의 잔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후에 다시 송이와 연결짓던 꼭지마저 떼내고 검은 알맹이들이 샤워한 후에 탱글탱글한 몸으로 채반에 누웠다
볕을 고르게 펴고 알몸을 뒤척이며 지난 날들을 반추한다
지난 겨울 세찬 바람에 흔들리며 봄을 간절히 기디리던 일이며, 온 몸에 새 움들이 돋아나며 청춘을 구가하던 짜릿한 일들이며, 올망졸망한 작은 꽃들이 무수히 피어나며 왕성한 생명의 훈장을 달던 아름다운 시절의 추억이며, 가뭄에 목이 타다 빗줄기를 맞으며 신명으로 키를 돋우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나무 안의 여러 분신들이 하나 안에서 생명작용을 하며 지나온 날들이었다
이제 나무는 텅 비어있다
생명은 통합과 분리의 연속이다
채우고 비우는 과정을 반복한다 채워야 비울 수 있고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이제 나무는 분신들을 하나씩 분리시킬 것이다 열매를 떠나 보내고 또 일들을 터나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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