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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옥수수를 까며

옥수수 알맹이를 깐다
가장 원시적 형태의 단순 노동인데 이런 일이 지겹거나 짜증나지 않는다
알맹이를 몸통에서 분리하는 일인데 의외로 이 일이 재미있고 즐거움이 따른다

<그까짓 것>이라며 단박에 하찮은 일로 판단하는 사람들은 생각이 짧거나, 시장주의 신도나 좀비이거나, 게을러빠진 사람일 것이다

일상의 평범하고 하찮아 보이는 사소한 일에서 가치를 찾아낼 수 있다
나는 이런 일을 일상에서 구하는 선적 체험으로 승화시킨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을 묵묵히 견디고 인내하는 마음, 섬세한 감각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심신일여를 체험할 수도 있다

양손이 옥수수 몸통을 이리저리 이동 시키면서 줄 지어 촘촘히 박혀있는 알맹이들을 밀고 당기며 분리시킨다 옥수수 알맹이들은 빈 공간쪽으로 무너져 나온다
이런 작업을 할 때 손은 하나의 기계가 되고 여러 손가락들은 부속품이 된다 다섯 손가락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협응하며 공동작업을 하는 세밀한 과정을 자세히 관찰하면 원시 노동 속에 고도의 역학적 원리가 담겨있다  

단순한 일을 반복하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화되는 느낌이 온다  
깐 알맹이들이 모두 내 손과 마주치고 내 생각과도 마주쳐소중한 먹거리가 된다
그래서 돈을 주고 사온 알맹이들과는 같은 듯 하지만 전혀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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