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 뛰지마라 배 꺼질라>로 시작하는 유행가 가사가 애절하게 절대 빈곤 시대의 굶주림을 환기 시킨다
흘러간 옛날 이야기가 내 폐부를 찌르는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은 선친의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 한 토막이다
소년 시절의 선친이 이웃에 갔다오더니 "어무이 밥을 말려서 묵읍디다 "라고 했단다
그러니까 1920년 대의 일제 시대 상황인데 늘 죽을 먹다가 어쩌다 이웃집에서 밥을 먹는 걸 보고 하는 말이다
나는 지금 뛰고 있다
옆에 있는 사람도 뛰고 있다
런닝 머신에서 거친 숨을 참으며, 아무 짝에도 소용없을 것 같은 일을 죽기살기로 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100년이라는 시차가 두 뜀박질의 의미를 정반대로 바꾸어 놓고 있다
내 생각에 끼어들어 사유의 깊이와 폭을 확장 시키는 인문학자 조르주 바타유의 일반경제론이다
햇빛은 무한한 에너지를 지표면에 제공하여 동식물을 먹여 살린다 그런데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고 남는 초과 공급은 자칫하면 파괴나 파멸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영양이 지나치면 비만이 되고 힘이 강해져 폭력으로 반사회적 행동이 될 수 있다
복권에 당첨되어 개인의 사용 한도를 초과할만큼의 부는 극단적 사치나 도박, 외도와 같은 파멸로 치달을 수 있다
신분 의식과 사치, 범죄, 폭동, 전쟁 등은 과잉 에너지를 적절히 소비하지 못한데서 오는 불유쾌한 파멸로 규정하며 유쾌한 파멸의 길을 제시한다
바로 상징의 논리로 표현되는 증여, 선물과 같은 행위가 과잉된 것을 남에게 조건없이 주는 것이라 한다
바타유는 우리 사회가 너무생산하고 축적하는 것에 치우쳐있고 인간이 사물화, 도구화 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일반경제론을 통해 목적이나 조건 없이 비생산적 소모로 과잉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한경제론이 강조하는 생산과 축적으로 안락한 삶을 추구하고 유용성을 극대화하는 사유와 정반대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생산성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은 쉽게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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