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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선녀와 나뭇꾼의 후속 이야기

나뭇꾼이 아내에게 날개옷을 보여주자 곧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로 떠나버리자 망연자실한 나뭇꾼의 뒷 이야기

<선녀와 나뭇꾼>이라는 동화를 좀더 깊이 사유하기 위해 의문을 제기해 본다
나뭇꾼은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에 당황하고 실망한 나머지 식음을 폐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선녀가 내려온 까닭이 무엇일까?
우연적일까, 기획된 것일까?
우연성을 강조하면 나뭇꾼이 동화의 주인공이 되고 선녀는 조연이 될 것이다
착한 나뭇꾼을 지상에서 천상으로 이끌어내는 기획된 것이라면 선녀가 주인공일 수 있겠다
선녀는 원래 인간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 속하거나 이상적 경지에 도달한 피안의 인간상이다

나뭇꾼과는 신분과 처지가 전혀 다르다 그런 선녀의 옷을 감춤으로써 유인하는 행위를 사슴의 보은으로 정당화하며 나뭇꾼은 아내로 삼는다
선녀의 자유 의지와는 무관하게 인간의 욕망 구조에 강제 편입 시키는데 이 밑바탕에는 가부장제가 전제되어 있다  
선녀는 남편에게 복속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노예에 불과한 존재가 된다
아이 셋을 낳을 때 까지 날개옷을 보여주지 말라는 사슴의 경고가 지닌 본질은 무엇일까?
자식을 낳아 기르게 되면 가족애가 생겨서 인간계에 동화되리라고 믿은 것일까?
아니면 선녀가 정체성을 회복하여 천상 귀의할 수도 있다는 잠재성과 보은의 한계를 정해 놓은 것일까?

나뭇꾼이 날개옷을 보여준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날개옷을 감춘 죄의식에서 벗어나 부부의 진정한 사랑과 참된 행복을 누리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선녀는 아내로서가 아니라 선녀라는 본연성, 본래성으로 되돌아가 천상으로 귀의하게 된다

전통적인 기준으로 보면 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행복하게 살다가 홀연히 떠나버리는 아내는 전통적 도덕 기준으로서는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유토피아를 찾아 이주한다는 관점으로 보면 선녀는 구원의 메신저다
비록 지금은 날개옷이 없어 함께 승천할 수 없지만 임시적 방편으로 먼저 승천하고 차후를 도모한 것일수도 있다  

지상세계의 행복보다 천상의 영원한 복락을 위해......
인간의 가족 제도보다 근원적인 하늘 나라의 절대적 기쁨과 행복으로 이끌기 위해.......
한 때 남편으로 사랑하던 한 인간에 대한 구원은 넘어 대승적인 차원의 구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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