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곡의 글방

취옹도 감상

 

創玄 朴鐘會  선생의 醉翁圖 한 점을 감상한다.


애주가이자 자칭 풍류객의 안목 밖에 없는


門外漢이지만...




 


남종화의 대가인 창현 선생은


인연의 묘한 씨줄과 날줄 몇 올로


交遊하게 된 존경하는 분이다.



그 분의 膝下에서  


女士(문인화 정신을 계승하는 여자 선비가 되라는 의미) 의 칭호를 들으며


감읍(感泣)해 하며 아내는 천박한 재주를 탓하지 않고


묵묵히 牛步처럼 걸어온 십여년의 세월에.


 


환경이 의식을 지배하는 것인지......


방관자였던 내게도 옷깃에 墨香이 배이고


많은 書畵帖을 뒤적거리며 한담을 나누니


 서당개 십년에 풍월을 읊는 격이 아니랴.


 



 


 


문인화를 寫意畵라고 하지 않는가.


좋은 그림은 그 안에 숨겨진 화가의 의도가 있으리라.

 

살짝 걷힌 발 너머 풀밭으로 봐서


노옹은 낮술에 벌써 취해 있다.


아마도 낮술에 취한다는 것은  적절한 생업이 없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취옹의 몰골 또한  可觀이다.


남루한 옷, 헝클어진 머리칼, 덥수룩한 수염은


술에 전념하다 보니 일상 생활과 용모는 뒷전으로 밀리고


오로지 술을 마시는 것을 일상의 최고의 낙으로 여기리라.

 

방은 텅 비었다.

아마 있던 세간은 모두 술을 사 먹었을 것이리라.

텅 빈 방에 나뒹구는 술병과 술잔, 안주는 없다.

이미 술병은  비었고 취중의 몽롱한 상태에 들었다.

 

醉中禪의 경지에 들었다. 

 三昧境이다.

현실과 이상의 假橋를 넘나들며

무지개를 타고 올라 천상 선녀의 시중을 받으며

酒仙들이 노니는 황홀경을 소요하고 있으리라.

 

천하의 권세도 재산도 부러울 게 없고

세상의 두려움도 근심도 없는 無念無想에 든 게  아니랴.

 

노옹에게는 對酌(대작)의 상대도 없는 홀로의 상태이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울려 웃고, 울며

가치 감정을 나누는 소통의 수단으로서 술이라기보다는

세속의 잡사와 사회적 관계에서 해방되어

고고하게 자신만의 至樂을 누리는 수단으로서 술을 선호한다.

 

그렇다.

獨樂! 獨樂!이리라.

이 노옹은 아마도 자신 안에 독락당 하나를 지어놓고

아무도 찾아내지 못하는 그 오솔길을 걷고 있는 중일 것이리라.

자신만의 至樂을 고요히 맛보기 위해.........

내 오랜 음주 취향이 그러했었다.

 

이제 노옹은  잡되고 각박한 현실적 삶의 도피자가 아니다.

삶은  적절하게 발효되어 두려움도 추악함, 복잡함도 고통도 없다.

더 이상의 경지가 없는 최상의 행복의 경지에 이르렀으리라.

 

 

'청곡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요함의 지혜  (0) 2013.06.18
강선대  (0) 2013.06.14
술의 미학  (0) 2013.06.12
바람이 되어 서성거리다  (0) 2013.06.03
존재하는 삶의 조건  (0) 2013.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