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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조선의 유학에서 충효사상


여행을 하다보면 길 어귀에 충효마을이라는 표식을 더러 보게 된다 예전의 학교 건물에는 충효교육이란 슬로건이 더러 부착되어 있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유교적 이념이 혼재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흔적이다

<상투를 자르라 고종 임금이 시범적으로 단발하었으니 만백성들은 국법을 따르라 >
그러나 조선의 유림들은 완강히 저항한다 고위직의 벼슬아치들이 사임을 하고 백성들의 울분과원성은 하늘을 충천케 했다 강제로 머리를 잘린 백성들은 잘린 머리카락을 집어들고 통곡하였다 부모닝이 물려준 머리카락 한 올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효의식의 단면이다

왕의 단발령에 반발하여 의병을 일으킨 이인영이 도성에 진입하기 직전에 부친이 사망한다 그는 부친의 장례를 위해 의병장을 즉각 사임하고 만다


130년 전 우리의 근대사에서 등장한 사건인데 아버지와 임금 중 누구를 따라야 하는 것일까?
유학이 나라의 통치 이데올르기였던 조선 사회에서 이러한 갈등상황에서 어느 쪽을 우선했을까?
이는 다른 말로 충과 효의 가치에서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와 같은 논리다

부모는 하늘이 맺은 관계고(父子天合) 임금은 의리로 맺은 관계(君臣義合)라 우선인 것은 부모라고 고전에서 밝힌다
그리고 만약 부모가 잘못을 범할 경우에 자식이 세 번을 간청해도 부모가 따르지 않으면 울면서라도 부모를 따르지만 동일한 상황에서 임금이 따르지 않으면 떠날 수 있다(예기 곡례편)고 한다
이처럼 조선과 중국의 유학에서는 효가 충보다 근원적인 관념이다


충성의 궁극적인 대상을 조선은 유교의 보편적 원리인 천리와 인의에 두었다 그래서 비록 임금이라고 해도 그런 천리 즉 하늘의 공공성에서 벗어나면 신하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잘못을 간하였다 사헌부나 사간원의 양사는 임금이 잘못된 길을 가지 않게 하려는 제도적 장치였다
일본 유학의 기본적 특성은 충성의 대상이 천황이었다
심지어 요시다 쇼인은 공자와 맹자가 자기 나라를 버리고 다른 나라의 군주를 섬기는 일을 비판하기도 한다 일본의 신하는 아무리 왕이 잘못을 저질러도 왕과 생사고락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시다 쇼인은 충효일치를 주장한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고 본다 이런 충호일치론이 메이지유신 이후의 교육칙어에서 명료하게 드러난다

조선의 효 우선과 달리 일본에서는 충이 앞선다 충과 효를 분리할 수 없는 일치관계로 만든다 황실이 본가고 국민은 분가이며 천황이 가족국가의 가장이라고 보고 천황에 대한 충성이 참다운 효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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