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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고장, 내 고향 거창

용포와 행기숲

 

 

 

치내(갈계)에서 약 500m 정도 수승대 쪽으로 내려 가다 보면 갈천이 위천으로 흘러가는

냇가 가운데 크고 작은 소나무들이 어우러진 울창한 숲이 하나 있다.

이곳을 행기숲이라 하는데, 이 행기숲은 냇가 가운데 섬을 이루고 있어서 이 숲의 양 옆으로 냇물이 흘러 간다.

 



 

 

 

이 행기숲 바로 아래 지금은 크게 깊지는 않으나 큰 소(沼)가 하나 있는데, 이 소(沼)를 용포라고 한다.

소나무숲이 있는 곳과 맑은 냇물이 있고, 넓고 큰 소(沼)가 있으므로 자연히 이곳을 찾는 피서객들이 많은데,

이 주변의 지세와 더불어 과히 한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곳이다.

 

 

 

 

 

 

 행기숲은 서동요와 연관이 있는 곳으로서 옛날 백제 무왕이 왕자일 때,

신라의 정황을 살피기 위하여 변복으로 신라로 가서 서동요를 퍼뜨리고,

그래서, 선화공주를 꾀어 백제로 넘어올 때 이곳의 경관이 너무 좋아서

여기서 며칠을 머물다가 갔다는 전설이 전하여지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선화공주가 이곳에서 목욕을 하다가 손에낀 가락지를 잃어 버렸다고도 한다.

 

 

 

 

 

 

이 숲의 명칭을 해인정(海印定)이라고도 하는데 신라 말기 국운이 다하여

고려의 압력이 무거운 짐으로 조여올 때,

신라의 사신이 후백제의 구원을 청하기 위하여 가다가 이곳에 당도했을 때,

신라 천년사직이 고려 왕건에게 넘어 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왕의 사신임을 입증하는 신표인장(信標印章)을 이곳에서 없애고

어디론지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도 했다.

 

 

 

 

 

 

행기숲 바로 아래 잇대어 있는 소(沼)를 용소 또는 용포라고 하는데,

옛날 이 소(沼)에서 두 마리의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한다.

원래 용이란 것은 돌담에서 천년, 흙에서 천년, 물에서 천년을 숨어 살면서

인간의 눈에 띄지 않아야 등천하여 비로소 용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용포에는 돌담에서 천년을 살고, 흙에서도 천년을 산 이무기가

이곳에서 마지막 천년의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라 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이 마을 사람이 아래 마을에 볼 일이 있어서 가는데

한 마리의 용이 용소에서 나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한 마리는 이 사람이 이곳을 지나기 전에 승천했고,

나머지 한 마리가 하늘로 올라가다가 이 사람의 눈에 띄게 된 것이다.

돌담, 땅, 물, 속에서 삼 천년의 은둔생활 끝에 용이 되어 올라가다가 사람의 눈에 띄었으니

그 숱한 삼천년의 공이 일순간에 괴학하여 하늘로 오르던 용은

처절한 울음소리를 여운으로 남긴 채 용소 속으로 떨어져 죽어 버리고 말았다.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 가는 이무기를 본 사람도 그 후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버렸다고 하는데,

이곳의 사람들은 그 후 이곳을 용소 또는 용포라고 부르고 이곳을 신성시하였다고 한다.

 

 

 

누가 바라보아도 범상치 않은듯한 풍경들이다.

거대한 바위들이 기이하고 아름다운 형상으로

맑은 하천에서 웅크리거나 누워 있으니

오랜 세월은 그런 전설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매끈한 바위 등에 앉아서 눈맛을 즐긴다.

이런 풍광을 어린 시절에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내 어린 시절은 축복이었다.

 

어린 시절에 용포에서 가졌던 깊은 소에 대한 두려움이나

자연에 대한 외경은 나에게 아름다운 내 정서를 길러주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무분별하게 개발한답시고 하천을 정비하다 보니 

깊은 소에 담긴 전설이 얕으막하게 드러나 신비를 잃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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