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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거창 황강 뚝방길을 걷다-시바이처가 되어

 

거창읍을 감싸듯 스쳐가는 황강을 바라보며 걷는 일이 잦다.

건강을 위해서, 사색을 겸해서, 아름다운 풍광을 향유하기 위해 

시민들이 산책을 하도록 잘 정비된 인도는 서정적이고 고요하다.

 

혼자서 걷는 이 길에서 고동치는 심장의 소리를 들으며 삶의 즐거움을 누린다.

찬 바람을 막아줄 복면 같은 목도리를 눈 아래까지 치켜 올리며 걷자

슬슬 발동하는 상상력을 누를 수 없으니.....

 

오늘은 내가 시바이처가 되어 걸어보면 어떨까?

이 행복한 상상을 어찌 로또 복권에 1등 당첨된 상상에 비하랴?

 

 

 

 

 

독일계 프랑스인,

박애사업을 위한 의학박사, 선교사이자 신학자, 오르간 연주자,

아프리카에 간 밀림의 성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치열한 집념과 노력, 불타는 인류애, 만인의 성자가 되어

한국의 소도시인 거창의 아름다운 강가를 거닐면서

소도시임에도 놀라운 경제발전과 복지의 혜택들을 가능케 한

산업사회의 이모저모에 대해 사유한다.

 

 

 

 

이 아름다운 하천, 이 작은 도시도

파괴의 과정에 이미 들어서 있구나.

문화적 자기 파괴의 도도한 흐름이 진행되고 있구나.

 

잘 정비된 도로, 방부목 데크를 걷는 작은 편리함에 취해

이 거대한 현대문명의 음모를 어찌 눈치챌 것인가?

탄식이 가느다란 신음처럼 퍼져 나간다.

 

 

 

 

 

거대한 중장비가 수백명의 인력을 대신해서 엄청난 효율로 강을 주무르다니......

하천이 마치 자로 잰 듯 규격화하고 바닥은 고르게 펴서 어찌할 것인가?

 

원래의 자연상태를 훼손하여 인간의 목적과 편의대로 뜯어 고치면서

문명의 발전이라는 괴상한 논리를 펴다니.....

 

 

 

 

 

발달된 조직의 저 엄청난 힘, 거대한 자본의 위력 앞에

무기력한 개인들이여.

 

조직에 눌리고 자본에 압도당해 의존적으로 변해 버렸구나.

자유로운 천부적 이성의 힘을 상실하고 말았구나.

 

안타깝게도 역사의 흐름은 다시 중세로 되돌아가는 것인가?

사유의 독립성을 희생하고 진실에 대한 믿음까지도 버렸는가?

 

 

 

 

 

모를 일이로구나.

밝은 표정, 화려한 옷, 다채로운 개성으로 자유로운 듯 하지만

정작 자유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이여.

 

사람들은 모른다. 자신들이 얼마나 일의 노예가 된 존재인 것을......

저 많은 차량, 분주한 걸음들, 치열한 생존경쟁으로

퇴화 되고 위축된 인간성을 어찌 회복할 것인가?

 

 

 

 

 

지나친 노동,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인간의 본질은 위축되고

그런 부모에 의해 양육된 아이들은 늘어만 가니

인간성을 상실의 시대는 얼마나지속될 것인가?

 

그런 과잉 노동을 강요 받은 현대인들은

차츰 정신적 가치를 잃고 육체적 요구가 늘어날 것이다.

 

천박한 오락이나 과도한 물질적 소비와 향락에 젖어

잃어버린 자신을 보상 받으려 하는 것이다.

 

나이트클럽 그 소란한 음악에 몸을 맡기고 미친 듯이 흔들며 취하겠지.

쇼핑에 취하고 전자 오락에 취하겠지. 스포츠에 취하고 영상에 취하겠지.

그런다고 채워지랴. 그러면 갈수록 더욱 높은 강도로 취하고 채우려 하겠지.

 

 

 

 

현대 사회는 파국을 향해 치닫는 열차다.

내가 왜 이리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것인가?

 

인류의 문명사에 대한 비관도 부정도 아니다.

단지 중심을 잃고 이리저리 휘몰리는 주체성 없는 대중들에게

충격 요법일 뿐이리라.

 

 

 

 

 

이런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새로운 르네상스가 필요하다.

중세의 르네상스보다 한층 새롭고 진보된 형태의 르네상스.

 

새로운 믿음과 태도로 자기 혁신을 이룩해야 할 것이다.

이같은 르네상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합리적 사고가 인간에게 가져다 주는

능동성의 원칙이다.

 

 

 

 

 

개인들은 집단과 끊임없이 교류를 하면서 집단을 완전하게 하는

힘을 집단에 주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고등교육을 받은 구성원이 많은 현대사회에서

개인들은 자신들이 지닌 전문적 지식과 기술, 기능 등을

사회에 재능 기부하는 것은 매우 기대할만한 대안이다.

 

이런 일들은 자발적 참여와 연대 의식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자기 자신을 남에게 주고, 동료를 사랑하는 능동성!

이런 삶의 전형을 살려고

피아니스트로서 성공하려 했던 야망을 포기하고

척박하고 소외된 아프리카로 향했던

지난 날들이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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