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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고사리 꺾기 - 낭만의 유희

 

허기진 마을을 굽어보던 민둥산에


바람이 불어와 고사리 포자를 사방에 날린다.


 


날아라. 멀리 멀리 기름진 땅에 뿌리 내려


지천에 널린 고사리 밭이 되어라.


 


뭇꽃들이 예쁘다한들 주린 이들에게


무슨 소용이 되리오.


 


고사리야! 고사리야!


네 꽃을 어디에 감추었나?


주려 서러운 이들이 눈에 밟혀


꽃이 되기를 마다한 것이더냐.


 


 



 


 


월성 계곡의 협곡이라 기울기가 급하지만


남애양지라 불리는 가리올 마을 뒷산을 누비며


중늙은이 한 사람 신바람이 났구나.


 


등에는 작은 배낭, 배에는 주머니 한 개 차고


귀에는 엠피3 리시버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눈이 두리번 두리번 길이 따로 없구나.


 


고사리가 알려주는 이정표 따라


전후좌우로위로 갔다가 앗차 이번엔 뒤로 돌아가는구나


신명에 넘치는 표정에 발걸음엔 흥이 넘실거리니


남애양지의 낭만을 찾는 유희로구나.


 


 



 


 


산을 휘이 둘러보며 내가 선창을 한다.


 


앞동산 양지바른 자락


춘삼월 따스한 볕에 통통해진 고사리 대공


부잣집 애기씨 종아리만큼만 굵어져라.


동네 너머 민둥산엔 가끔씩 산불이 난다는


소문들이 바람결에 들리는구나.


 


 


곧 바로 응답하는 산의 메아리


 


양귀비 예쁜 꽃이 어찌 부러울손가?


내 비록 五彩로 단장하지 못했어도


태고적부터 이 땅의 토박이 되어


갑남을녀들의 희로애락의 동반자 되었도다.


 


 



 


 


세상의 모든 일은 때가 있는 법이려니


봄볕을 시샘하는 바람이 부는


청명 한식은 고사리를 꺾기 시작하는 호시절(好時節)이라네.


 


외기둥에 세 갈래 가지를 치기 전


고사리 머리에 달린 조막손이 펴지기 전


유들유들한 연녹색 밑동이


‘똑’ ‘똑’


꺾이는 소리 또한 듣고 싶은 소리가 아니던가?


 


 


길 아닌 길 - 이 길은 보물섬으로 가는 길이라네.


길섶을 잘 살펴야 하리.


고사리밥 덥수룩한 마른 잎 사이에 숨어 있다네.


 


다갈색에 잔솜털이 송송한 머리를 내밀고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세상을 기웃거리는


귀여움이 탐스럽다.


 


‘아직은 어린 나를 꺽지 마셔요.’


하루 이틀만 더 기다려 달라는 애원에


손길이 잠깐 머뭇거리기도 하는구나.


 


 



 


 


빨리가면 놓친다오. 탐하지 마시구려.


고개를 들어 천천히 살펴보시구려.


내딛는 발걸음이 선선처럼 사뿐사뿐 내디디구려.


 


보물은 감추어지는 법이라오.


길섶 초목들의 어수선한 틈바구니에 숨어서


숨바꼭질을 하자는 즐거운 놀이라오.


 


 


길 아닌 길 - 이 길은 험난한 고난의 길이라네


산초나무 잔 가시여, 청미래덩굴 늘어진 가시덩굴이여.


어찌 이 遊客의 길을 가로 막는 것이더냐?


 


오! 이제는 알겠구나.


산을 산답게 하기 위한 소박한 자기 방어인 것을.....


문명에 길들지 않으려는 야성의 지킴이인 것을.......


 


내 기꺼이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며 무릎을 꿇으마.


이 길이 어찌 낭만의 길이더냐. 호사(豪奢)스런 소리마오.


 


 



 


 


 


이 산길에 스민 가난과 설움의 노랫 소리를 들어보오.

 

 

껑자 껑자 꼬사리대사리 껑자/   꼬사리껑꺼 바구리에 담고/  송쿠껑꺼 웃짐 엱꼬/ 


칙순을 뜯어 목에다 걸고  삐삐 뽑아서 손에다 들고/ 우리 집이 어서 가서   우리 애기 젖을 주세


 


 


 


이 산 저 산 댕기면 고사리 대사리 껑꺼서/ 선영봉사 하여를 볼거나 /당나디제니 디장장


 


 


 


 


 


 


 


                            ( 진도의 고사리 노동요에서 인용) 


 


 


 


    


 


 



 


 


 


치열한 생존을 위한 가혹한 노동요요


고단한 삶의 여정을 달래는 치유의 노래로다.


 


달아오르는 땅의 거친 숨결


흙 묻은 남루한 의복, 가시에 찔린 살갗은


수난의 길에선 성자의 가시밭길이로구나.


수난을 자청하여 가시관을 쓰셨구나.


 


 


 


 


축제에 올릴 신성한 음식로다.


첫 수확은 이 몸 지어주신 조상님의 몫이라네.


 


포동포동 살진 맏물 고사리 꺾어다가


정성스럽게 데치고 따사로운 햇볕을 널어 말려


제사상에 올려야 한다네.


 


제삿밥에 여러 나물을 넣고 비벼서 나누어 먹으니


죽은 조상님과 산 후손들의 영혼이 교감하는구나.


피붙이들이 만나고 일체감을 누리니 복된 음식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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