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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장미와 찔레

 

 

 

장미와 찔레는 같은 무리로 분류하는 장미과 장미속의 한 同屬(동속)이다.


일란성 쌍둥이가 하나는 귀족 가문에 입양되고 하나는 서민으로 남게 된다는


어떤 逸話가 이 글머리에 생각이 난다.


 


마치 장미가 도시의 귀족에 입양된 꽃이라면


찔레는 한적한 시골 마을 어귀에 무성한 덤불로 방치된 甲男乙女 같은 꽃이기 때문일까?


 


 


 



 


 


 


장미는 그 강렬한 붉은색과 매혹적인 향기, 화려한 조형미로


뭇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꽃 중의 꽃이다.


 


시의 패션쇼에 나온 팔등신의 미녀랄까.


사람들은 장미에게서 사랑과 열정의 의미를 부여하며


폭발하는 엔돌핀 같은 기쁨과 환희의 매개체로 곁에 두고 싶어 한다.


 


 



 


 


 


 


내 어찌 장미 한 아름을 안고


불타는 사랑과 격정적 기쁨을 누리고 싶었던


젊은 시절이 없었었으리오만


나는 이제 뜰에 찔레 한 그루를 심고 싶다.


 


자라고 꽃 피고 열매맺는 찔레를 즐거움의 대상으로서만이 아니라


강인한 생명력과 애잔함을 사유하는 대상으로 바라보고 싶다.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며 평온하고 잔잔한 세라토닌의 기쁨을 느껴보리라.


 


 


 



 


 


 


 


찔레는 마을과 동떨어진 외진 곳이나 산모퉁이에서


賤待 받으며 서럽게 살아온 꽃이다.


 


糊口之策으로 마을 외진 곳에 진을 친 남사당패처럼 무리를 이루고 있다.


제 몸에 돋아난 수많은 잔가시와 덤불로


부지런한 농부들의 낫에 잘리며 기피의 대상이 된 제 운명을 탓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자기 방어의 수단이요,


자존을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고 항변하지도 않는다.


다만 하얀 꽃을 피워 은은한 향기를 날리며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어한다.


 


 


 



 


 


 


찔레는 아무리 잘라도 잘라도 돋아나는 억센 생명력의 표상이다.


찔레를 눈물 머금은 눈으로 바라보라.


 


때로 배고픈 아이들은 그 꽃을 따먹으며


어머니를 기다리며 애절한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인지 찔레는 고난과 질곡의 역사를 살아온


우리 민족의 마음 한 켠에서 피어나는 情恨의 꽃이다.


 


 


 



 


 


 


사군자는 孤高한 선비의 붓에서 기품을 드러내고


사철 푸른 솔은 절개의 표상이 되고


목단은 영화의 표상이 되었다.


 


장미는 부잣집 마님처럼 속속곳에 분홍 속치마 겹쳐서 두르고


행여 주림질세라 세심히 감아올리며 칠보 단장 향내를 머금었다.


 


 


찔레에게서는  생존의 절박함으로 구겨진 얇은 홑치마를 걸친


촌부의 싱그런 땀내음이 끈끈히 배어나온다.


인고의 풍상을 말없이 견딘 수행자의 향불 내음이 난다.


 


 


 



 


 


찔레꽃 진 자리에 솟아나는 붉은 열매는 훈장처럼 당당하다.


붉은 훈장은 한겨울에도 퇴색되지 않으며


배고픈 새들의 먹이가 되고 忍冬의 힘이 된다.


 


 



 


 


 


덧없는 세월이 흘러 내 은발이 더욱 수척해지고


가을걷이 후의 전답처럼 비고 쓸쓸해질 때면


지나간 삶을 회고하는 일이 잦아질 때


나는 찔레 덤불 앞에 작은 의자를 놓고 오래 머무를 것이다.


 

욕심없는 마음으로 은은하고 수수하게 차려입은

촌부 같은 찔레에게 다가가리라.

 


비록 한 눈에 현혹되는 화려한 꽃은 아니어도,


일류 모델의 향수처럼 煽情的이지는 않은


찔레 덤불에 두 팔을 두르리라.


 


언제나 찾아가 투정을 부려도 가탈 부리지 않고


억울하고 힘든 일을 털어놓으면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줄 찔레나무에 기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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