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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의 즐거움

창선 마을 - 가마소의 서정

 

오늘은 셔터를 눌러줄 아내가 있어

일상의 한 단면을 노출하게 된다.

 

스킨스쿠버를 즐겨 포항 인근의 바다나

영덕 오십천의 깊은 하천에서 잠수를 즐기다 보니

고향에서도 깊은 소를 찾아다니며 운동을 겸해서

물밑의 풍광을 즐기게 된다.

덕유산에서 흘러 내리는 청정한 계곡에 이런 소가 있다는 것은

하늘이 내린 淸福이 아니랴.

 

아직은 물이 차갑지만 오들오들 떨어가며

가마소에서 한 시간 정도 스노클링을 한다.

가마소의 수달처럼......

 

 

 

 

창선 마을 위 분설담 아래에 위치한 가마소는

내가 즐겨 찾는 수영장이다.

 

일대에서 가장 깊은 沼라 수량이 많을 때는 물이 세차 위험하기도 하다.

물 깊이가 두 세길이 넘고 위쪽은 소용돌이가 있는데다

바닥에 돌출한 바위가 곳곳에 있어서 다이빙은 절대 금물이다.

하필 오늘 아이 하나가 사고가 나서 경찰들이 연신 사진을 촬영했다.

작년에도 학생 하나가 안타까운 사고를 당하기도 했던 곳이다.

하천에 대한 외경심이 없이 단순한 놀이터로 여기는 무모함이 사고의 주범이다.

 

 

 

 

창선 - 그 마을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얼마나 온화한가?

덕성을 강조하는 마을 이름답게 이곳 주민들은 순박하고 예절 바르다.

昌善 마을이라면 남해의 창선 대교가 있는 창선 마을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同名의 인연으로 두 마을이 얼마 전에가지 자매 결연을 해서 교류를 해왔다고 하는데........

 

 

순전히 내 추론이기는 하지만

과거의 어느 시점에 남해 창선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이주해 온 것이 아닐까 하는 가설을 제기한다.

그 근거로 왜구의 침략을 받던 남해안 바닷가에서

안전이 어느 정도 담보되는 이곳까지 피난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거창 군지에서도 나타나듯이 과거 거제도 사람들이 상기와 같은 목적으로

거창 지역으로 집단 이주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거창의 말과 풍습들이 인근 지역과 다른 독특한 특징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런 가설을 제기하는 또 하나의 근거를 우리 선대의 이주에서 찾아본다.

고려 시대 공민왕 대에 정 유와 정 손이라는 진양 정씨 선조의 형제가

남해안의 하동에서 살다가 왜구의 침략을 당하게 된다.

형제는 부친을 피신 시키기 위해 교전을 하다 아우인 정 손이 죽음을 당하게 된다.

 

 

정 손의 오세손인 정 순이 처음으로 안의현에 속했던

지금의 북상면 농산으로 이주를 하게 된다.

(정 순 선조는 나의 15대조부님이시다.)

 

두 창선 마을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을 제기한다.

그러나 나의 천박한 역사 지식과 탐구 의욕의 부족으로

그런 가설은 여기에서 멈추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