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곡의 글방

반딧불과 랜턴의 깜빡이등

 

 

요즘 매일 밤마다 집 앞에 있는 반딧불들의 향연장에 간다. 

 

청정 환경의 상징적 아이콘으로 귀족 벌레가 된 덕에

반디는 가리올 공연장의 주연이고 나는 유일한 관객이다.

 

 

반디는 꼬리에 늘 깜빡이등을 켜고 다닌다. 

제 몸으로 생산한 빛을 꼬리에 달고 깜빡거리며 날아 다닌다는 것이

반디가 없었더라면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어린이의 천진한 눈에 샘솟는 호기심과 신비함이란......

그래. 반디는 빛을 들이 마시고 내뱉으며 숨을 쉬는 것이지.

아니야. 반디는 친구들과 불놀이를 하는 중이야.

아니야. 엄마 잃은 반디의 구조 신호란 말이야.

 

 

 

 

 

그 깜빡거림에 밝음과 어둠이 찰나에 교차한다.

한 순간에 낮이 가고 밤이 온다.

광명의 꽁무니를 뒤쫒던 암흑이 손아귀로 잡아채려는 순간

다시 빛 속으로 곤두박질친다.

 

빛과 어둠이 뒤엉켜 마침내 한덩어리가 되자

시계 바늘이 빠르게 미친듯이 돌아간다.

 

하루가 저 꽁무니의 불빛이 명멸하는 한 순간으로 축소된다.

우리의 한 생애가 한여름밤을 수놓던 저 며칠이나 다를 바 없으리라.

덧없어라. 무심한 세월

 

 

 

 

 

 

불의 요정, 반디들의 깜빡거림을 오래도록 바라보노라니

켜고 꺼짐은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는 것이 만물의 도’ 라는

주역 구절이 떠오른다.

 

우주 자연의 모든 현상은 유기체던 무기체던 형상에 따라

음양이라는 양극단으로 대립 되어 있다.

세상 만물이 분화되기 이전의 혼돈의 상태에서 

氣는 완전히 靜寂하고 無形이나 어떤 원인에 의해서

음양의 二端으로 분화되었다.

 

삶과 죽음도, 밝음과 어둠도, 남성도 여성도, 善과 惡도,

사랑과 미움도, 上과 下도, 春夏와 秋冬도  陽氣와 陰氣도

상대되는 짝이 있는 대자연의 법이려니

 

불을 켜든 수컷의 양기가 암컷 음기를 찾아가는 로맨스에는

음양이 서로 상대적이요, 대립하는듯 하다가도

궁극적으로는 융화되어 천지는 조화를 이루는구나.

 

 

 

 

 

 

돌아오는 길에 나도 반딧불처럼 랜턴의 깜빡이등을 켠다.

한 순간 길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언제그랬냐는듯 떡 버티고 섰다.

밤나무 향기가 진하게 무르익어가는 숲이 도깨비불 앞에

심란해지며 나도 초조와 불안을 감추지 못한다.

 

빛과 어둠이 일순간에 반복적으로 교차하는 일은 종말의 징조요, 위기이다.

오늘날 환락의 도시는 위기의 징조를 내포하고 있다.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미친듯 울리는 경적, 시선을 끄는 도심의 사이키 간판

알콜에 취한 도심의 밤거리, 취객이 토해내는 음란함.

 

급하고 격한 행위는 사고를 유발할지니

도심의 곳곳에는 앰뷸런스가 비상 깜빡이를 켜고 다닌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고 천둥이 치고 번갯불이 번쩍인다.

들에는 지금 개구리들은 생식의 욕구에 미친듯이

암수가 서로를 껴안고 사랑을 나눈다.

 

현란한 사이키 조명이 돌아가는 도시의 나이트 클럽에는

청춘들이 이성을 찾아 개구리처럼 눈을 번뜩일 것이다.

 

그래 그래. 음은 양을 아우르고 양은 음을 아우를지니,

그러나 숨을 고르게 펴고 천천히 우아하게

반딧불처럼

 

 

 

 

 

 

 

 

'청곡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독의 미학 1  (0) 2014.07.12
변덕쟁이의 변명  (0) 2014.07.03
스포트 라이트  (0) 2014.06.20
장미와 찔레  (0) 2014.06.16
반딧불 - 추억의 섬으로 가는 등댓불  (0) 2014.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