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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스포트 라이트

 

 

하루에도 몇 번씩 逍遙(소요)하는 뜰이지만


야간에는 색다른 재미와 감동이 있다.


 


랜턴을 들고 외등을 끈 캄캄한 뜰에 나서는 일이 잦다.


고작 휴대용 랜턴이지만 꽤 쓸모가 있다.


2단 밝기 조절 기능과 깜빡이 기능을 갖춘 충전용인데


2백만 촉광의 강력한 빛이 직진하여 서치라이트가 된다.


 


 



 


 


내 抒情의 원천, 영혼의 휴식처, 대자연의 향연장에


불을 환하게 밝히는 일은


마치 연극 무대를 비추는 조명이 아니랴.


말이 조명이지 나는 조명 기술은 문외한이지만


조명의 효과에 곧잘 도취되곤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삶이라는 연극 무대의 거대한 장치다.

낮은 태양이라는 엄청나게 밝은 조명이

밤은 달과 별이라는 조명이 어둠을 밝힌다.

 

 

이런 자연 조명은 인류의 공용 조명이라면

가로등, 정원등이나 지금 휴대한 랜턴은 인공 조명이요,

개별 연극 무대의 작은 조명이란 재미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명은 빛을 밝게 비추는 것이다.

천지 창조 이전의 혼돈의 세계에는 빛이 없었다.

빛 자체가 없었을 뿐 아니라 비출 대상이 없었다.

아직 개별 사물들이 분화되기 이전이었을 테니까.

런 상태에서 창조주의 의지가 생겨나고

그 말씀이 빛이 된다는 것이 기독교적 세계관이다.

 

 

칠흑 같이 어두운 밤은 천지창조 이전의 혼돈을 상기 시킨다.

세계는 매일 生滅한다. 소멸과 창조를 되풀이 한다.

천지 개벽 이래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대자연의 이법이다.

 

 

밝음과 어둠의 순환 - 밝음은 창조요, 어둠은 소멸이니

빛을 비춤으로써 한 순간에 천지가 문을 연다.

 

 

세계가 창조되고 최초의 빛이 온누리에 퍼지던 환희가

아담에게서 유전된 잠재 의식의 발로인지........

나는 오늘도 조명 놀이를 즐긴다.

 

 

 

 

 

랜턴을 처음 든 유아의 호기심과 천진함은 장난기로 발동한다.

저 아랫 밭에는 반디가 뜰에는 아이 하나가 빛의 놀이를 즐긴다.

 

빛의 유희가 시작된다.

쥐불놀이하는 소년처럼 빛이 천상으로, 사방으로 빙빙 돌아간다.

한 순간에 치솟는 하늘로 가는 길이 열리고

천지 사방을 찰나에 달려 사방의 모서리가 없어지고 둥근 원이 된다.

200만개의 촛불이 내달리는 상상을 초월한 쥐불놀이다.

 

인공의 태양 같은 밝은 조명이 어둠의 복판을 찌르듯 관통한다.

곤히 잠든 사물들이 빛에 반사된 동공을 비비며 투정 섞인 듯 깨어난다.

 

수십개의 LED 전구가 제각기 반사판으로 빛을 집중해서 생산한

강열한 빛이 한 대상에게 클로즈업된다.

 

 

 

 

 

 

이제 세상에 유일한 피조물에게 빛이 반사된다.

조명이 다가가자 무대가 개막되고 주연 배우가 된다.

그를 무대의 주연으로 연출하기 위해 세상은 어둠에 제 존재를 숨긴다.

빛을 받은 사물은 제 형상을 취하고 자신의 고유한 독자성을 도도히 드러낸다.

 

 

오늘은 달 조명 상태가 어떤가? 음 . 그래......

앞 산을 넘지못하도록 달을 천정에 붙들어 매어 최대한 뒤로 미루고

조도가 낮은 별 조명은 구름으로 가려 놓아야지.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밝기 차이가가 큰 명암 대비 효과를 살려야지.

그래야 빛과 빛깔이 더욱 뚜렷이 제 형상을 드러내고

율동의 효과가 극대화될 것인데.......

 

 

 

 

 

 

 

 

이 뜰의 바람은 패랭이게로만 불어대는 것인지.

조명을 받을 때마다 변신하는 이미지들.

소매 끝에 팔랑개비를 든 분홍의 요정들.

불꽃이 되어 타오르는 꽃의 정령.

바람을 타고 춤을 추는 압살라의 千手.

바람에 안길 듯 감싸다가 돌연 토라진듯 튕겨내며 펼치는 춤사위.

 

 

분홍 저고리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에 취한 아이는

어느새 열정적 로맨스에 빠진 청년으로 성장한다.

 

 

누구인가요. 내 잠을 깨우는 그대는

누구인가요. 내 꽃잎 향기에 취하는 그대는

내 님이신가요? 나를 무대의 주연으로 발탁한 그대는

 

빛들이 경건하고 조심스럽게 근접해 간다.

때론 빛이 전후 좌우로 발걸음을 수정해 가면서

빛의 각도와 크기를 조절한다.

최상의 조명을 찾아내려는 조명 감독의 실험처럼.

 

 

 

 

 

 

빛은 생명체에게 희망과 감동을 준다.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는 빛이 되어 구원의 길을 밝힌다.

 

등대는 표류하는 이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길이요, 희망이다.

달동네 골목에도 보름달은 구석구석 달빛을 비춘다.

 

 

 

 

 

빛은 생명체의 식량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길이요, 감동을 전하는 수단이다.

 

 

연인의 침실에 살금살금 다가가던 빛이 촛점에 이르자 멈춘다.

나뭇잎이 전율하며 꽃에 번지는 충만한 존재의 희열.

꽃은 아름다운 형상과 향기로 응답한다.

종의 창조 이래 한 번도 바꾸지 않은 그것들은 絶對美.

객석에는 오직 한 사람이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를 보낸다.

 

 

 

 

 

 

안타까워라 그대 앞에선 이내 둔감함이여!

독수리의 눈을, 개의 코를, 돌고래의 귀를 가질 수 있다면

함박 웃음으로 응답할텐데.

 

 

배우와 관객 사이에 오가는 교감.

저러다 밤이 더욱 이슥해지면 주객이 어디 있으랴.

혼연일체가 되어 한 줄기 빛의 향연이 황홀경에 닿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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