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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변덕쟁이의 변명

 

 

“당신은 변덕쟁이란 말이요.”


뜰을 거닐다가 아내가 불쑥 던진 말이다.


나무를 하도 자주 옮겨 심으니까 나무들이 우리 발걸음만 들어도 벌벌 떨겠다며.


 


   


“변덕쟁이?” 하며 내가 빙그레 웃음을 지었으니 절반은 자인한 셈이다.


‘변덕쟁이’란 어휘 자체에 사람을 卑下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어 약간은 서운하지만


유쾌한 상황에서 농으로 던진 말이기에 괘념치 않는다.


 


 


 



 


 


 


수년 전에 성격유형검사인 MBTI 전문 교육 보수과정을 서울 모대학에서 이수한 적이 있다.


내 성격 유형을 보면 확고한 INFP 유형인데 그 일반적 특징 몇 가지를 나열해 본다


 


내면적인 가치를 완벽해지도록 추구한다./ 현실감각이 둔하다/


목가적이며 몽상가적 기질이 많다/ 즉흥적이며 변화가 심하다/


얽매이기 싫어하며 자유롭고자 한다/ 반복되는 일상을 싫어한다./


인간과 종교에 관심이 많다./ 여러 가지 일을 벌이기 좋아하나 끝맺기를 어려워 한다./


자신의 가치가 침해되면 맹렬히 저항한다./


 


 


 


 



 


 


 


열거한 행동 특징들이 내게는 정곡正鵠을 찔린듯 적확한 표현이다.


인간의 성격을 16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하는 무서운 도구의 섬뜩함이 스친다.


 


 


그 때 그 때의 기분에 따라서, 현실을 무시하고,


내면적 열정이 무계획적으로 현실에 투영되다 보니


사실에서 많은 시행착오와 오류를 범하기 일쑤인 것이다.


일을 시작해 놓고 끝을 맺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떻게 사는 삶이 가장 좋을까요?”


보수교육 당시 지도 교수의 물음에 모두 주의가 집중되자


“제 꼬라지대로 사는 게 최고랍니다.” 하면서 좌중의 폭소를 유발했었다.


 


그렇다. 나는 외형적인 모습과 함께 내면적인 성격의 유형,


그것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 내 독특한 내면의 ‘꼴’이 있는 것이다.


 


 


 



 


 


 


몇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면


가벼운 글을 쓰는데도 글의 말미에 끝. 이란 종지부를 쉽게 찍지 못한다.


몇 번의 교정을 거친 후에도 어쩐지 뒤가 캥기는듯 하여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


그런 연후에도 다시 글을 펴서 미숙한 표현이나 완전하지 못한 어휘나 표현들을 정정하기 일쑤다.


목공 작품을 하면서도 이미 전시된 작품을 다시 손질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는 확실히 끝맺음을 명확하게 하거나 어떤 결론에 쉽게 이르지 못하고


최종 결정이나 결론을 유보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개연성에 대한 실낱같은 호기심 때문일까?


완벽이라는 최선, 최종의 과정에 이르기 위해 고뇌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꼴'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유형들은


시작도 없도 끝도 없는 우유부단을 약점으로 지적할 것이다.


 


 


나는 일의 결과보다 일의 과정을 더욱 중시하는 타입이다.


결과는 더 이상 유동성이 없는 종결된 상태라면 과정은 역동적이고 가변적인 유동 상태다.


뜰에 심은 화목은 보다 이상적인 상태로 진행되는 과정에 있으므로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현실에 맞추어 이리저리 옮겨심는 것이다. 


 


 


나는 어느 산을 몇 번 다녀왔다는 사실을 업적처럼,재산처럼 소유하기보다는


그 산에서 이러저러한 느낌이나 경험들을 즐기는 점을 중시한다.


그래서 등산을 하면서 정해진 길, 일행과 함께 일정한 대열 속에서, 정상을 정복하고 환호하기보다는


길 아닌 곳에서 자신의 주관적인 가치를 찾아 홀로 다니기를 좋아한다.


 


 


 


 


 


 


 


이러니 변덕쟁이란 말을 들어도 싸다.


나무를 심어두고도 옮겨심기 예사에다가,


완성된 글이나 작품을 다시 고치기 일쑤에다가,


산에를 가도 엉뚱하게 제 혼자 다니기를 좋아하는데다가,


더욱 결정적인 것은, INFP의 운명적 내면의 꼴을 자의반 타의반 인정하니


 


 


변덕쟁이랄 수 밖에.


과연 나는 변덕이 심하다.


좀 심하게 말하면 변덕이 냄비에 자글자글 팥죽 끓듯 한다.


환갑이 되도록 끓였으니 냄비 바닥에 물이 다 떨어지고 눌어붙게 생겼다.


 


 


 


 



 


 


 


그러나 세상에 이유 없는 무덤 없다카는데 변명할 틈도 좀 주어야재.


제 속에 열불을 품은데다 내면적인 가치가 완벽해지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디기 어려운 걸 어쩔테여?


 


 


목가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데 따뜻한 속마음에, 인간적이다 보니


때론 심약해져 쉽게 좌절하고 갈등도 어찌나 많은지 모른다네.


그뿐이 아니여. 헛참. 사람이 소심하기는, 사소한 일에도 늘 반성하기 바쁘다네.


어쩌겠는가? 제 타고난 꼬라지가 그러니 이해를 하게.


 


그래도 말이여.  고래 변덕이 심해도 한결같은 뚝심 하나는 있다네.


남한테 직접 대놓고 말하기 좀 머시기하지만


제 마누라 애끼는 마음은 여지껏 한번도 변덕을 부려본 적은 없다카두마.  흐흐


 


 


(이슬방울 몇 알들을  '빛이 만든 아름다운 세상' 블로그에서 기증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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