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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장독의 미학 1

 

 

 

볕 잘 드는 시골집의 한 모퉁이는 으레 장독대의 차지다.


해말간 얼굴의 장독들은 하나같이 滿朔만삭의 여인이다.


부풀어 오른 妊婦임부의 배는 생명을 품은 팽팽한 긴장감이 넘치는 곡선이다.


그 곡선은 창조의 원천으로 지극히 아름답다.


 


새처럼 위에서 보면 장독들은 하나같이 완전한 동그라미다.


땅에 뜬 보름달이다. 어느 한 쪽도 일그러짐 없는 웃음이다.


보름달은 가장 완전한 곡선인 원이 되어 세상을 두루 비춘다


 


 



 


 


 


 


자연과 인간의 창조물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기하학적 공간은 원이다.


최소한의 길이로 최대한의 공간을 담을 수 있는 것이


원이라는 원리는 누구에게나 수긍이 가는 보편적 진리다.


이 원리 속에는 가장 적은 재료로 가장 넓은 공간을 창출하여 효능을 극대화 한다는 지혜가 담겨있다.


 


 


원에는 또한 심오한 상징적 의미와 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다.


수면에 돌 한 개가 떨어지면, 돌의 모양과 상관없이, 1차적으로 수면에 생겨나는 것은 원이다.


그 자극에 영향을 받아 발생하는 진동에 의해 2차적으로 발생하는


원이 퍼져나가며 동심원을 그리며 더 넓게 더 멀리 퍼져 나간다.


 


 


원은 1을 상징하는 우주의 공통 분모,


원에서부터 모든 도형이 산출되는 기하학적 패턴의 자궁이라고 믿었던 고대 희랍인들이다.


 


 


옹기쟁이의 물레가 부지런히 돌아가며 완전한 원형을 빚어내는 장면을 연상하다


이런 심오한 인류의 사유와 지혜를 찾으며 나는 독을 예찬한다.


 


 


 



 


 


 


여러 장독들이 윤기있는 정갈한 모습으로 마당에 가지런한 모습은 일상사에서 누리는 멋이다.


그 집이 초가에다 잘 익은 박 몇 덩어리가 함박 웃음을 머금는 보름밤이라면 황홀하겠다.


자연의 동그라미들이 연출하는 풍취風趣로 이보다 좋을 수가 있으랴.


 


 


 



 


 


 


 


뚜껑을 덮은 장독 한 개에 시선이 머문다.


햇볕에 윤기가 반지르르한 독은 부지런한 아낙의 미소요, 앞치마처럼 정갈하다.


지면에 고정되기 위해 바닥은 평평하고 세워놓은 가운데가 불룩한 반원형으로


직선이 주는 안정감과 곡선의 부드러움이 잘 조화되어 있다.


 


장독 옆면의 곡선은 여성적이라 여체의 풍만한 아름다움과


 팔을 둘러 감싸안는 듯 배려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독은 그 안이 비어 있으므로 무엇을 담을 수 있는


가능태로써 여유와 호기심을 자극한다.


 


 


 


 



 


 


 


시선을 장독대 전체에 두면 은일한 일상의 평화와 안정을 찾을 것이다.


장독대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


 


사람들의 말은 조용하며 눈길을 따사롭다.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긴 동심처럼 포근해지고 아스라한 추억으로의 낭만 여행을 하게 한다.


 


독들은 어떻게 서 있어도 아름답고 조화롭다.


서로 손을 잡은 듯. 장독 한 개의 개성이 장독대 전체의 분위기와 조화한다.


그래서 어디를 둘러보아도 눈은 순해지고 마음은 편안하다.


 


 


 


              


 


 


 


우리 조상의 생활의 여유와 멋의 아이콘이 된 독은


은근과 끈기의 心性심성이 빚어낸 느림의 여유다.


 


독은 시간을 느리게 가도록 저장하는 그릇이다.


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늘 참고 기다리며 느긋하다.


그런 독을 빚기 위해 여러 공정마다 숱한 땀과 정성과 영혼을 요한다.


 


 


 


 


          


 


 


 


옹기문화에는 대중적 전통 미학이 담겨 있다.


옹기는 도기의 화려함과 완벽한 미의 극치보다는


서민들의 일상과 함께 하는 질박한 생활용품이다.


 


호의호식하는 부잣집 마님이 아니라 들에서 땀에 찌든 아낙의 민낯이다.


도자기는 안방의 귀중품이지만 독은 마당에서 비를 맞고 볕을 쬔기를 좋아한다.


 


 


 


 


 




 


나는 장독이 먹빛 같아서 좋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유약이 불을 만나 빚은 윤기가 나는 잿빛인데,


솔가루와 콩깍지에다 약토를 섞어 삭힌 후에 앙금을 내린 잿물을 바르고


고온의 가마에서 구운 태극의 빛깔이다.


 


 


화려한 색상이 활개를 치는 세태에,


五彩오채를 초월한 보다 원초적인 빛깔을 버리지 못하는


옹고집쟁이의 시류時流에 영합하지 않는 일편단심에 마음이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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