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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큰 물지는 계곡에서

 

 

어릴 적에 큰 비가 내린 후에는 마을 앞 장뜰 냇가에 우두커니 서서


큰 비로 물이 불어난 강을 바라보곤 했다.


 


자연 현상이 연출하는 異變이변은 묘한 쾌감과 청량감을 갖게 했다.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에서 탈피하고픈 욕구가 반영된 것인지,


영적 씻김을 통해 카타르시스의 쾌감을 누리려는 것인지.....


 


눈가의 잔주름 몇 갈래, 은발이 성성한 초로에 접어든 그 소년이


50년이 지난 지금도 불어난 물줄기를 응시하며 발걸음을 쉬이 떼지 못한다.


 


 


 



 


 


ㅅㅆㅆ ㅏㅏ ㅜㅜ-


꿈결인지, 바람결에 실려온 것인지,


여러 소리가 뒤섞인 기세가 넘치는 소리에 이끌리듯 나온 것이다.


 


시나위 장단이다.


소매가 넓은 강물이 너풀너풀 춤을 추며 연신 토해내는 신음이다.


 


신음이 합주가 되고 차츰 방울 소리로 변하며


주위의 초목이며 바위가 서서히 전율한다.


빗방울이 거세지며 방울 소리를 내며 하염없이 떨어져 내린다.


 


 


 



 


 


陰鬱음울하다.


세상은 웃음을 잃고 사람들은 활기를 잃는다. 


태양이 어디론가 잠적한 하늘은 밝은 빛을 잃고


온 세상이 음의 기운으로 충만하다.


 


 


 


 


 


풀이며 나무며 바위가 웅얼거리며 젖는다.


차츰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운다.


 


잎새 사이로 흐르던 눈물이 아래로 아래로 떨어진다.


바위 틈으로, 실개천으로 모이더니 이골 저골의 가는 물줄기가 합쳐지며


울음을 울고 한 가닥의 춤 사위가 된다.


 


 


 



 


 


 


물길에 나뒹굴던 돌이며 나풀거리던 갈대 무리는 포복(怖伏)한지 오래고


솟은 바위마저 장궤(長跪)한 채 무서운 기세에 눌린다.


 


광란(狂亂)의 질주가 시작된다. 무당의 칼날이 번뜩이며 시퍼런 광채를 띈다.


시나위 반주가 호흡이 급박해지며 신명을 받은 무당이 풀쩍풀쩍 뛰어 오른다.


 


 



 


 


멍 하니 풀린 동공에 참담했던 지난 세월이 고인다.


의식을 잃고 혼미해지며 최면인지 꿈결에 드는 것인지.....


 


영혼이 노도의 물길에 반드시 드러 눕는다.


가슴팍이 열리고 모든 세포 조직들이 열려 실핏줄마다 흘러간다.


 


아직 고백하지 못한 채 깊숙히 묻어둔 죄의 실오리를


어루만지는 손 길, 속삭이는 음성은 마법사의 치유다.


 


 


 



 


 


                                          해원(解寃)굿이다.


씻김굿이다.


                                          세례 의식이다.


 


 


 



 


 


 


몇 겁의 저 너머 원시 부족의 집단 무의식이 환생한다.


원혼을 달래기 위해


온 부족이 자학적으로 깊은 소에 투신하던


아득한 기억의 편린이 남아 있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