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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마르고 비우는 계절의 사색 2

 

 

 

 

 

 

9월의 볕에 담쟁이며 둥글레가 바짝 마르고 있다.

부황든 얼굴에 타는 목마름으로 미풍에 흔들린다.

 

며칠 째 말을 잊은 초목들은 젖은 제 가슴을 열어 말린다.

지난 날의 환희, 열정, 탐욕, 번뇌, 분노가 마르고 있다.

 

 

 

 

파릇파릇 돋아나던 봄의 生氣생기가 샘솟던 계절에는 씨를 뿌리고 꿈을 꾸었다.

旺氣왕기 넘치던 여름에는 땀 흘려 가꾸며 치열하게 탐했었다.

봄과 여름은 활동적인 양의 계절이요, 남자의 계절이다.

 

 

 

 

가을을 숙살지기肅殺之氣라고 했던가?

엄숙함과 살기가 기운이 감도는 가을에는 거두며 정리해야 한다.

 

다가올 겨울의 死氣에 대비해야 하리라.

가을과 겨울은 비활동적인 음의 계절이요, 여성의 계절이다.

 

 

 

 

 

가을의 문턱이라는 입추와 처서를 지나 추석, 백로가 목전에 있다.

순환하는 계절의 마차 그 둥근 수레 바퀴는 소리없이 가을의 역으로 이동을 한다.

 

하늘은 높고 깊어간다.

이제 천궁에 얼마 남지 않은 따사로운 햇볕은

자비로운 은혜처럼 오곡백과를 무르익게 할 것이다.

 

이제 달구어진 대지의 열화를 둘러싸고 식히는

음의 기운이 이슬이 되고 청량한 바람이 된다.

 

 

 

 

 

스산한 소슬 바람이 분다.

그 왕성하던 기운이며 꺼질 줄 모르던 열기가 사그러진

남자는 이제 처진 어깨, 움츠린 가슴으로 옷깃을 여민다.

이 계절에 남자는 어디론가 정처없이 떠나고 싶어한다.

그의 표정은 엄숙해지며 눈매가 憂愁우수로 깊어진다.

 

이 계절은 자신의 내면으로 떠나는 사색 여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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