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방 담화

돌아와요 부산항에 - 조용필, 정한의 가수

 

나는 조용필이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를 좋아할 뿐 아니라

조용필이란 사람을 좋아하여 그의 테이프를 전축에서 자주 듣는 팬이다.

 

그는 음악의 무명시절부터 연주와 보컬리스트로, , 발라드, 디스코, 민요, 동요 등의

다양한 장르를 익힌 백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다.

 

그룹 애트킨즈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다가

1969, 8군 무대에서 데뷔,

1971년에 3인조 음악 그룹 김트리오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락 음악으로 전환하였으며

1974년 자신의 이름을 쓴 조용필과 그림자라는 그룹을 결성하게 되었다.

26세가 되던 1975년에 솔로로 전향하여 발표한 트로트 음악,

돌아와요 부산항에이라는 곡이 히트를 기록한 후 처음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조용필이 초창기에 부른 노래보다 중년 이후에 부른 <돌아와요 부산항에>

애절한 호소력으로 영혼을 적시는 감동을 선사한다.

 

조용필이 특정 세대나 계층에게 일시적으로 영합하는 반짝 가수가 아니라

국민 가수로 융숭한 대접을 받는 것은 우리 민족의 미의식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情恨정한의 가수이기 때문이다 

 

 

 

          

 

 

 

조용필은 눈에 확 띄는 외모와, 현란한 춤과 무대 매너,

특이한 개성이나 카리스마도 갖춘 것 같지 않은 평범하고 온순해 보이는

그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묘한 일이다.

 

그의 소리에는 사람들의 심금을 흔드는 마력이 있었다.

소리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 민족이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잠재된 <情恨>이라는

공통된 정서를 깨우고 흔들며 두드린 것이다.

 

 

           

 

 

조용필의 노래에는 그늘이 깊다.

원래 그늘이란 판소리에서 통용되는 용어인데

소리 가락을 오래 수련하여 삭혀낼 때 시김새가 좋다고 한다.

시김새가 좋은 광대의 소리에서 빚어지는 운치와 멋을 그늘이라고 한다.

그의 노래 중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 <한 오백년>은 그런 의미의 그늘이 깊은 노래이다.

 

 

그의 소리에는 시김새 여운과 운치의 그늘이 깃들고 있다.

한의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그가 판소리를 익힌 것은 운명의 계시인지 모른다.

쉰듯한 껄껄한 소리의 수리성은 고향과 가족을 떠나 櫛風櫛雨즐풍즐우의 客苦객고에서

지치고 삭은 忍辱精進인욕정진의 肉化육화된 소리이다.

 

 

           

 

 

그의 노래에만 그늘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산전수전을 다 겪은 원숙한 인간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歌王기왕이라는 세속의 평가와는 달리 그 자신의 삶은 파란만장하여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무명 시절, 이혼과 사별, 대마초로 출연 금지 등의

어두운 그늘이 있었다.

 

그의 노래는 그런 삶의 영화와 그늘이라는 극단적인 양면을 자전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심장병으로 죽은 아내의 유산을 모조리 심장병 재단에 기부하는 등

소리 없이엄청난 기부를 한 자선가이다.

 

인간 조용필은 정이 많은 사람이다.

자신을 만나기를 원하는 병상의 소녀를 위문하기 위해 스케쥴을 취소하고

위약금을 변상했던 순수한 인간미에 우리는 모두 감동한다.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은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우네 

 

이 노래가 발표된 때가 1970년대 중반이다. 필자에게는 꿈에 부푼 대학 시절이니

유신정권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시대이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이 노래가 좌경화된 재일동포들에게

왜곡된 조국의 이미지를 고쳐주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의 <재일동포 모국방문>이란 사업과 연계되어

인기의 바람을 탔다는 것이다. 꽤 수긍이 가는 말이다. 

 

이 노래는 대한민국 제1의 항구 도시인 부산의 이미지를 내세우는 효과도 강하다.

동백섬, 부산항, 오륙도라는 부산의 지명을 앞세워 항구 도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한다.

노랫말은 지극히 단순하다. 형제, 친구, 민족의 이별을 아파하며 해후를 갈구하는 내용이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70년대의 상황은 잘 살아보자며 일어난 새마을 운동과 함께

도시로 떠난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고향을 등진 이들에게 성공과 출세와 귀향은 보편적인 소망이요 간절한 염원이다.

남부럽지 않게 잘 살기 위해 온갖 辛酸苦礎신산고초를 겪어야 했음은 당연하다.

 

귀향은 그런 고난에서의 해방이며 도달해야 할 종착역이다.

그럼으로써 맺힌 한을 푸는 것이기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도가 되었으리라.

 

 

 

'사랑방 담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채근담을 노래하다 - 추만호 선생의 선물  (0) 2014.10.18
영웅과 존재 지향의 삶  (0) 2014.10.15
화투판 小考  (0) 2014.09.24
교황의 미소  (0) 2014.08.21
강태공의 낚시  (0) 2014.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