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두를 조각한다.
느티나무로 두 개를 만들 것이다.
부처의 얼굴과 머리에 쓴 장식관이다.
머리에 달팽이가 많이 붙은 장식관이 고난을 극복하고
해탈에 이른 부처의 무한한 승리의 영광을 보여준다.
부처님 얼굴보다 더 자유롭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이 또 있을까?
입춘이 되어도 바깥 바람은 아직 차다.
단순한 작업은 지오돔 안에서 따스한 햇볕을 쬐며 즐긴다.
조각도를 살살 망치로 다루거나 사뿐히 느티나무의 살을 베어낸다.
부다의 두상에 붙은 많은 달팽이들이 많기도 하지.
성인은 두상에 달팽이가 붙은 줄도 모르고 삼매에 빠져 있구나.
밤새 내린 이슬에 젖은 머리에 달팽이가 붙어 있는 것인지.....
달팽이를 입체감있게 표현하자니
많은 집중력과 끈기있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루한지 성큼성큼 걷더니 이제 아예 뜀박질을 하는구나.
나는 놀랍게도 단순 작업을 장시간 지속해도 지루해 하지 않는 희한한 근성이 있다.
우리끼리 하는 말로 정박아 수준의 인내심이라고 하며 껄껄 웃는다.
마땅히 해야 할 일도 아니고 급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누구와 약속을 한 일도, 잘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감도 전혀 없다.
오늘의 작업 목표를 정하지도 않는다.
하다가 싫어지면 그만 두면 될일이기 때문이다.
순전히 욕망이 흐르는대로 내맡겨둘 뿐이다.
단순 작업을 하면 명상의 효과가 있는 것 같아서 좋다.
차분해지고 맑아지고 고요해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내가 쓸모없는 일을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나무라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깻쭉지가 쳐지는 나를 위로하며
"큰 어리석음(大愚)이야말로 현자라네."
"쓸모없는 것이야말로 쓸모가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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