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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막돌로 탑을 쌓으며

  

나는 막돌로 담장이나 돌탑을 쌓는 일을 아주 좋아한다.


세상에 이리도 재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막돌은 아무렇게나 생겨 쓸모가 없는 돌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리저리 굴러 다니다 발에 채이거나 농부의 걸림돌이 되어


밭가로 팽겨쳐지기 일쑤다.


 


막돌은 저마다 생김새가 천차만별(千差萬別)이다.


흙을 뒤집어쓰고, 이리저리 구르다 깨진 돌이 대부분이다.


그 중에도 반듯하고 균형잡힌 돌은 디딤돌로 스카웃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생김새랄 것도 없을 만큼 박색(薄色)이라 아무데나 널부러진다.


 


나는 시멘트나 황토 벽돌을 줄을 쳐놓고 두부 자르듯 반듯이 쌓는 일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동일한 규격에 자로 잰 듯한 반듯한 기계적인 조합에는 단조롭고 획일적이어서 숨이 막힌다.


엉기성기한 틈, 약간의 허술함은 털털한 이웃 아저씨에게서 풍기는 친밀감이다.


 

 

 

 

 

갯돌은 물에서 구르고 깎여서 매끈하지만 각진 면이 없어서 담이나 탑을 쌓기에는 좋지 않다.


()이 있어야 돌끼리 서로 맞댈 때 틈이 적어서 보기에도 좋으려니와 단단하게 결합하기 때문이다.


 


갯돌은 마치 도시의 매끈한 몸매의 아가씨라면 막돌은 화장이라고는 모르는 허름한 산중 아가씨다.


래서 막돌탑을 지나칠 때는 누구라도 돌 한두 개 올려놓는다.


 


그런데 아무리 막 생겨 먹은 돌이라 해도 예쁜 구석 한군데는 있는 법이려니.


돌마다 제일 잘 생긴 면이 제 얼굴이 된다.


돌탑이 아름다운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다.


돌도 체면치레를 한다는 것을 쌓아본 사람은 안다.



 

 

 

탑을 쌓다보면 돌 한 개, 돌 한 면까지도 돌려가며 살핀다.

제 몸매를 드러내는 막돌이 당당하다.

내 손 위에서 막돌은 평생 처음 자긍심으로 뿌듯하다.

거들떠 보지도 않을 작은 돌조차 선택을 받아 굄돌로 쓰이니 큰 돌의 요동(搖動)을 막아준다.

 

버려져서 외롭고 모난 막돌이기에 더욱 강열하게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막돌들이 서로 맞물고 단단히 결합하면 모자이크가 된다.

평면적인 것이 아니라 입체적인 모자이크가 되어 결속력은 강해진다.

 

 

 

 

 

아래쪽은 큰 돌로 위로 갈수록 작은 돌로 쌓아야 균형미가 있다.

종의 형상을 한 탑은 아래쪽은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져야 구도가 안정적이다

 

돌을 고른다. 어디 보자꾸나.

땅 속에 묻혀있던 돌이 눈부신 햇빛에 제 나신을 드러낸다.

패션쇼에 출연한 모델들처럼 제 몸매를 드러내며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배치된다.

 

 

 

막돌은 제 혼자 모습이야 보잘 것 없지만 좋은 짝을 만나면 팔자가 달라진다.

모퉁이에 구르다가 발에 차일 돌이 탑돌로 쓰였다면 상팔자가 아닌가!

 

팔짱을 끼고, 다리를 걸치고, 사이에 끼이고, 짓누르며

이제는 한 몸이 되어 소망의 탑이 된다.

 

막돌은 이제야 제 꿈을 이룬다.

이제는 막돌이라 부르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