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사람을 그리면 으레 열 개의 손가락, 눈썹까지 그려야 하는 것으로 알았었다.
그래서 나는 그 고역 같은 그림에 흥미를 잃고 말았던 것 같다.
중국 그림들을 보면 독특한 표현 방식이 있다.
그림의 구도에서 중요한 것은 남기고 불필요한 것은 버리는 것이다.
사소한 것 까지 그리면 주객(主客)의 구분도 없어지고
경중(輕重)이 사라져 구도를 말할 수 없게 된다.
돌담의 엉기성기한 틈에서 철쭉 가지 하나가 빼조록히 나와 꽃 한송이를 피운 것을 보았다.
무수히 많은 철쭉 무리 중에서 가장 내 마음을 사로잡은 풍경이었다.
청나라 이방응의 매화 그림 화제에 고개를 끄덕인게 된다.
눈에 띄는 사방 천만 그루 가지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두서너 가지일 뿐
내 삶이, 오늘의 내 구체적인 삶이 한 폭의 풍경화라면 나는 어떤 구도를 잡을까?
반복적이고, 진부하고 무의미한 일상적인 것들은 화면에서 버려야겠다.
옳지! 구름과 산과 안개나 나무 숲 뒤로 숨기거나 가리는 것이 좋겠구나.
여백이 있는 삶은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새롭고, 특별하고, 의미있는 일이나 사건이나 생각에 대해서는
집중 조명하듯 섬세하고 확대해서 표현해야겠다.
하나가 있어도 될 때는 둘이 필요 없고
다섯이 있어야 될 때는 넷이어서는 안된다
민간 화가들은 이런 원칙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취하고 버리는 것은 엄격해야 한다. 지나치게 많거나 부족하지 않게 적절해야 할 것이다.
때에 맞게, 상황에 맞게 처신을 함으로써 아름다운 그림이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진부한 열 마디의 훈계보다
다정한 눈빛, 엷은 미소, 꽃 한송이의 격려는 얼마나 절제된 아름다움인가!
이것이 버리는 방식이다.
때로는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미사여구로 장식한 찬사가 필요한 것이다.
악기를 연주하는 악공의 섬세한 열손가락의 유연한 동작도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취하는 방식이다.
내 삶이 한 폭의 동양화가 되기 위해서 취사(取捨) 선택을 해야 하리라.
알곡을 가리기 위해 바람에 티를 날리듯 체로 치듯
내 일상에서 주옥(珠玉)들을 가려 꿰어야 하리라.
'사랑방 담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휴대폰 이야기 (0) | 2015.03.13 |
---|---|
돋보기 단상 (0) | 2015.03.12 |
긍정의 심리학 - 오늘은 좋았어! (0) | 2015.03.10 |
경칩이라 (0) | 2015.03.07 |
정월대보름날의 축제 (0) | 2015.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