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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돋보기 단상

 

 

나이가 들면 소지품이 하나 둘 늘어나게 된다.

차츰 퇴화되어 가는 기관들은 제 기능을 조금씩 잃어가는 터라 보조구에 의탁하기도 한다.

노후의 징표인 돋보기, 의치, 지팡이, 보청기 등이 노후로 가는 간이역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안방과 서재와 공방마다 애첩 같은 돋보기를 셋이나 거느리고 사는 나는 욕심쟁이다.

하기사 명분이야 다 있는 법이지.

 

공방에서는 칼날을 봐야 하고, 마무리 작업에 꼼꼼해야 하고,

서재에서는 PC모니터와 책의 작은 활자를 봐야 하고,

안방에서는 잠들기 전 베개맡에서 글을 써야 하니,

이리저리 들고 다니기 귀찮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중 하나가 실종이 되어 아무리 찾아봐도 헛수고라,

오늘은 읍내로 가서 기어코 돋보기 한 개를 맞추었다.

두 개만 해도 너끈하지 못한 것은 내가 익숙한 것에서 자유롭지 못한 탓이리라.

이제는 욕심쟁이에다가 융통머리 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인지.....

 

 

      

 

 

돋보기를 처음 끼면서 노안의 서글픈 소회를 밝히는 이들을 위로했었다.

 

자연이 넌지시 보내는 신호 아니겠어요?

그동안 왕눈을 뜨고 맹열하게 쏘아보던 눈을 더 이상 혹사하지 말라는 경고 겸 위로가 아닐까요?

이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뒷짐을 지고, 숨을 가라앉히고, 젊은이들을 지켜보라는 암시가 아닐까요?

이제 저 먼 산, 지평선을 바라보며 때로는 보이지 않는 산 너머를 통찰하라는 뜻이 아닐까요?”

 

 

  

 

 

그런 위로의 근저에는 노안이 아니라 혜안(慧眼)’이 있다.

즉 사물을 꿰뚫어 보는 지혜를 터득하는 눈이라는 것이다.

 

약품을 사거나 전자 제품을 구입하면 매뉴얼이란 것이 깨알 같은 활자로 적혀 있다.

그런 전문적이고 세부적인 지식이나 정보는 밝은 눈과 명석한 뇌를 가진 젊은이들의 소관으로 돌리자.

불교에서는 모든 현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차별의 현상계를 보지 말라는 것이 혜안이다.

 

 

 

 

혜안은 심안(心眼) 즉 마음의 눈이기도 하다.

헬렌 켈러는 보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마음의 눈을 뜨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촉각을 바탕으로 하여 상상을 발휘하며 사물을 마음의 눈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풍부한 감수성과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었던 것이리라.

 

 

 

 

나의 이러한 돋보기에 대한 단상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음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돋보기의 유혹에 넘어간  탓이다.

말로만 그렇지 여전히 욕심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융통머리 없는 초로의 간이역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 때가 있는 법이지.

언젠가는 이 세 개의 돋보기가 이리저리 뒹굴다가

아무 미련없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때가 올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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