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차를 우려 마신다.
어린 찻잎을 찌고 덖어 만든 설록차 중작을 개봉하고 두 번째 마신다.
차구(茶具)는 지인이 쓰시던 것을 양도받은 것이다.
이번 일본 여행을 계기로 일본의 다도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가질 것이다.
다도 관련 책을 읽게 되고 일본의 차의 고장인 우지를 다녀오면서 흥미가 생긴 것이다.
우리는 원래 손님을 융숭하고 지극 정성으로 접대하기 좋아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차는 손님이 방문했을 때 접대하는 기호 식품으로 단연 으뜸일 것이다.
차를 나누면서 손님을 정성껏 공경하며 교유(交遊)하는데 이처럼 좋은 매개체가 있을까 싶다.
큰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준비하는 과정이 어려운 일도 아니면서
약간의 정성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원래 차는 중국에서는 약용으로 시작되었는데
일본은 가마쿠라 시대에 선승들이 졸음을 쫒기 위해 중국에서 수입된 것이라 한다.
그러다가 13세기에 일본 내에서 차를 재배하면서 끽다(喫茶)가 보편화 되고 차츰 기호 식품으로 바뀌어 갔다.
그러면서 차에 대한 등급을 매기는 투다회(鬪茶會)가 생겨나기도 했다.
이러던 풍조를 크게 변화 시킨 인물이 무라타 주코라는 승려였다.
그는 차를 마실 때는 경건함과 차분함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차노유)
무라타 주코는 다선일치를 부르짖은 일휴스님의 교시를 받았다.
차의 본성은 다경(茶經)에서 말한 바처럼 검박함과 냉랭함이란 것이다.
다실은 호화롭지 않아야 하고 검소하고 소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차를 마실 때는 쓸쓸하면서도 고담(枯淡)스런 경지에 들어야 한다며
이를 와비차라고 했다.
일본 다도나 일본 미(美)의 본질은 ‘와비사비’라고 한다.
와비는 한적하거나 부족함을 사비는 쓸쓸하면서 고담한 것을 가리킨다.
꽉 짜인 완벽함이 아니라 부족한 듯 여백이 있고,
아름다움을 다하지 않은 감추어진 그 무엇이 있는 것을 말한다.
지금 우리 집에 반가운 손님이 오면 뜰에 핀 꽃 몇 송이를 딸 것이다.
파란 망토를 걸친 꼬마 요정 같은 달개비와 향기 가득한 개미취를 어우러지게 하고
단풍든 화살나무 한두 가지로 꽃꽂이를 하면 어떨까.
비록 독립된 다실은 없지만 야외 테이블에서 여위어가는 가을볕에 쓸쓸해지며 고담스럽게
차를 마시고 싶다.
오늘은 친구 하나가 불쑥 나를 찾아오면 좋겠다.
그런 친구와 한가롭게 차를 마시고 싶다.
늘 시간에 바빠 허둥거리지 않는 친구, 대화에 여백이 있는 친구,
작은 꽃 한송이도 한참 들여다 보는 친구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차를 마시면서 시들어 가는 잎들에 애잔한 미소를 보내며
해맑은 눈에 담긴 쓸쓸함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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