섶다리는 추억의 박물관에 놓인 다리다.
산업화의 깃발이 올라가기 전, 나라가 가난하여 백성들의 실생활을 돌볼 여력이 부족할 때
백성들의 자발적 필요에 의해 가설된 다리다.
(무주 남대천의 섶다리 시연 -15회 반딧불 축제에서)
철근과 시멘트에 익숙한 세대는 이해하지 못한다.
저 다리 하나가 놓여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절실함과 합의와 땀을 필요로 하는지를.......
자연 부락 단위로 자율적인 負役(부역)에 의해 건설된 마을의 단결의 상징이요, 노동력의 총화다.
섶다리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마을 사람들의 자긍심이 되기도 했다.
비록 섶다리가 보행용에 불과하고 언제 홍수에 휩쓸릴지 모르는 임시 방편이라고 해도.
(무주 남대천의 섶다리 시연 -15회 반딧불 축제에서)
징검 다리의 불편을 겪어 보아야 섶다리의 필요를 절실히 느낄 것이다.
한 여름 홍수 때마다 물이 불어나면 바짓 가랭이를 걷고 등짐을 단단히 한 뒤에
미끄러운 돌을 디디며 조심스레 건너야 했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어른의 손을 잡고 노디(징검다릿돌의 경상도 방언)를 건너다
가방을 물에 떠내려 보내는, 아동 시절의 최대의 시련을 당한 적이 있었다.
(무주 남대천의 섶다리 시연 -15회 반딧불 축제에서)
게다가 어지간한 징검 다릿돌은 물길에 휩쓸려 내려가기 일쑤였다.
그러면 급한 사람이 우물 판다고, 누군가에 의해 노디가 놓여지곤 했다.
섶다리를 만들려면 다리를 지탱할 수 있는 다릿발 목재와 다리의 밑바닥에 걸칠 수 있는 목재
그리고 잎나무, 풋나무, 물거리 같은 나뭇가지들을 엉기성기 덮고 고정을 시켜야 한다.
그 위에 흙을 깔아서 비로소 보행이 가능했던 것이다.
(무주 남대천의 섶다리 시연 -15회 반딧불 축제에서)
지난 해 무주군 반딧불 축제에 갔더니 추억의 박물관에서 가져온 섶다리를 남대천에 만들어 두었다.
그 위 아랫쪽에 있는 콘크리트 다리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빙긋이 웃는 듯 했다.
실제 생활에 필요한 다리가 아니라 추억을 회상하는 관광 홍보용 다리인 것이다.
답교놀이!
정월 대보름날 휘영청 달 밝은 밤에 다리를 밟으면서
팍팍한 삶에 풍류를 가미하는 세시풍속은
마을 사람들과의 유대와 정을 돈독히 하고
행여나 마음에 둔 님을 공공연히 만날 수도 있는 설레는 축제의 장이었으리.
소박한 놀이에서 건강한 웃음을 되찾고 삶의 애환, 시름을 잊었으리라.
나는 추억의 다리를 걸으며 환상에 잠기며
노랫가락 한 소절을 만들며 의미를 새겨본다.
다리를 밟아보세 다리를 밟아보세
이 다리가 내 다리냐, 저 다리가 내 다리냐
어화둥둥 다리야!
올해도 무병장수에 만사형통이라네
과거로 가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백주대낮에 백일몽을 꾼다.
그 옛날 뚝섬의 답교놀이 현장을 달려간다.
오방색 복장에 고깔을 쓴 풍물 패거리들이 사물을 치며 흥겹게 돌아가는 놀이판으로....
(무주 남대천의 섶다리 시연 -15회 반딧불 축제에서)
오늘날의 우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 예전 - 매스컴이 없던 시절, 놀이 문화가 발달하지 못하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소박하고 단순한 놀이에서도 흥은 오늘에 못지 않았던 것을.......
오늘은 어떤 소리꾼들이 온답디까?
산타령이라면 최고로 알아주는 선소리패거리들이 온다고 하제. 아마.
뉘라더라. 으음. 오늘은 뚝섬패와 왕십리패가 자웅을 겨룰 것이라는 구먼.
구경꾼들은 침을 삼키며 기대에 부푼 눈망울로
오늘의 답교놀이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하다.
나는 황용주의 선소리산타령이 좋더랑께.
그 양반이 모가비가 돼서 장단을 매기는 장구 소리는 천하 제일이랑께.
그 소리를 받으며 소고춤을 추는 놀이도 볼만 한 것이여.
명창들이 서서 산 경치 타령으로 불러
모가비가 장구로 장단 짚으며 앞소리
대형 이룬 여럿이 소고춤 추며 뒷소리
그냥 소리만 들어도 없는 흥이 ‘얼~쑤’
(무주 남대천의 섶다리 시연 -15회 반딧불 축제에서)
저 소릴 들으면 힘들고 괴로운 일도 싹 잊어버리고
어디서 솟아나는지 힘이 솟구친당께. 안그런가?
벌서 흥에 겨워 어깨를 들썩 거리는 사내들에게서
막걸리 냄새가 확 풍긴다.
이어서 모가비의 도화타령 한 소절이 쩌렁쩌렁 거리며
좌중의 분위기를 고조 시킨다.
‘도화일지 꺾어들고 춘풍화류 희롱이나 하잘꼬/
얼씨구 좋다 멋이로다 에허요 에헤야/
얼씨구 좋다 어화 이 봄을 즐겨 보세.’
저 모가비 이름이 소암(韶菴) 황용주(黃龍周)라네.
저 양반이 왕십리패의 이명길에서 이창배로 이어지는 소리 맥이라네.
이런 상상 여행, 환상 놀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섶다리를 걷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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