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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의 즐거움

유홍초와의 인연 작년에 거제도 바다목장이라는 펜션에서 반 줌 가져온 유홍초 씨앗들이 제 터를 잡았다 그냥 휙 뿌렸을 뿐이다 땅을 파서 덮어주지도 않고 톡톡 두드려주지도 않고 한 알 한 알 정성을 들여 심은 것도 아니다 손바닥만한 땅, 이미 다른 풀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도 자연스럽게 경쟁해서 살아남는다 가느다란 덩굴의 풀이지만왕성한 생명력으로 수북히 자라고 있다 스피노자의 코나투스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제 존재를 보존하려고 하고 발전 시키려고 하는 노력은 모든 존재의 본질이 된다 코나투스는 모든 유기체에 공통적이지만 그 내용은 사몰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사람이 볼 때는 유홍초가 매우 미약해 보이지만 강인하고 신비한 힘을 내재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저 하찮아 보이는 풀 한 포기에도 신의 속성이 깃들어 있어 외경의 대상이 .. 더보기
참나리의 농염함 참나리가 곳곳에 피어나 꽃을 피운다 변두리의 소외된 땅에서도 참나리가 피어나면 정겹고 화사하여 눈길과 미소가 피어나니 참나리는 미의 전도사이다 큰 키에 날씬한 몸매를 가진 참나리들이 개화하여 군무를 펼치는 장면을 보면 낭만적으로 변하게 된다 참나리는 곡예사다 진한 반점이 촘촘한 주황색 의상을 입은 요정들은 농염한춤으로 유혹하며 나를 낭만 유객으로 바꾸어 놓는다 상하로 길쭉하게 주름잡힌 치마 같은 허리를 위로 젖히며 직선에서 곡선으로, 원을 그리듯 한다 그 중심부에 발을 디딘 암술과 수술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교합하니 로맨스의 극치다 나는 자칭 낭만주의자라 한다 낭만주의는 중세의 신비주의에 모범을 둔다 그들에게 상상력은 우주와 자연의 신비를 여는 문이다 자연은 영혼을 가진 존재로 낭만주의자들의 추앙을 .. 더보기
또 벌에 쏘이고 장마 중에 마구 자라난 풀이며 나뭇가지를 손질하는 중에 또 벌의 기습을 당한다 옷을 입은 등을 침으로 찌른 것이다 이 뜰이 늘 안전하고 평화롭지는 않다 아야! 나도 모르게 낮은 비명이 나오고 2,3초 후에 벌이 날아간다 꿀벌에 쏘인 것보다 더 아프고 오래 지속되는 것이 바다리의 소행일지 모르겠다 서서히 어둠이 깔리는 시간이라 벌이 제 잠자리에 드는데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영역을 침범 당했으니 나를 공격한 것이다 자연 속에서, 그것도 넓은 부지에서 생활하는 일은 이런 사소롭지만 불편하고 때로는 고통을 당하기도 하고 잠재적 위험으로 불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자연을 통해서 누리는 바에 비하면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한 것이다 백화가 만발하고 온갖 새들이 노래하고 많은 생명체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 공간은 나만의 영.. 더보기
옥수수를 따며 옥수수를 딴다 첫 수확이란 표현은 직업적 생산이란 뉘앙스가 풍겨 그냥 딴다고 한다 거무튀튀한 수염이 꼬들꼬들해지면 껍질 안쪽을 눌러보며 잘 익었는지 살핀 후에 대공에서 아래로 꺾는다 이렇게 신중이 살피는 게 다 그럴만한 경험이 있다 너무 일찍 따니까 익지를 않아 버린 일도 있었고 너무 늦게 따니까 삶아도 단단해 식감이 안좋았던 것이다 툭^ 소리를 내며 내 손에 들어오고 고운 명주 저고리를 대여섯 겹이나 껴 입은 옷을 벗기며 흡족한 미소가 흐르고 촘촘히 박힌 속살을 슬쩍 들추어 보며 한 겹만 남긴다 옥수수 수염을 벗겨내며 호기심 가득한 아이처럼 의문을 품는다 수염은 무슨 일을 한 것이지? 몸통에 세로로 줄을 쳐놓고서 삼백여 알갱이들을 군인들 열병하듯 줄을 세운 것인가? 분명히 수염이 막중한 역할을 하며 여.. 더보기
제피가 익어가고 밭가에 제피나무 한 그루를 심어놓고 거름, 비료, 농약 한 번 주지 않는데도 잘 자라 풍성하게 열매를 달고 있다 오늘 제피 열매를 딴다 제피를 수매한다는 현수막도 걸리고....... 노랗게 익어가는 지금이 적기란다 낮은 자리는 아내가 따고 나는 사다리에 올라 따는데 꾀가 생겨 양동이 하나를 줄로 연결하여 목에 거니 안성맞춤이다 손으로 열매를 훑어 바로 그릇에 담을 수 있다 이런 사소한 과정도 재미로 여기는 것은 여유의 덕분이다 사다리를 밟고서 손에 잘 닿지 않는 긴 가지는 끌어당기니 작업이 수월하다 작년에 수확하여 난생 처음 농산물을 팔고 첫 경험이라 쑥스럽기도 했던 학습 효과로 올해는 새로운 접속을 한다 아내에게 농반진반으로 다짜고짜 5:5로 나누자고 하니 "좋소"한다 "어디에 쓸라오?"하길래 자연이 .. 더보기
능소화 꽃은 지고 노오란 꽃 한 송이가 툭 어깨 위로 떨어진다 바람도 잔잔한데 때가 되었구나 방금 떨어진 꽃의 자태는 아직 생생하다 아깝고 안타까운 것은 사람의 마음일 뿐 이리라 변하지 않는 것이 없구나 제행무상의 진리는 만고불변이로구나 개화니 낙화니 하는 구분이 부질없는 일이다 살아서 꽃을 피우고 죽어서 떨어지는 일이 일여(一如)하다 유무도,미추도, 호오도, 선후도, 우열도, 진위도 없이 평등하다 이제 풍성하던 능소화 꽃들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저 꽃들이 다 지고나도 허전하지 않으리라 더보기
벌에 쏘이며 전지를 하다가 벌에 한 방 쏘인다 전지 트리머로 철거덕거리며 이발사 머리 깍듯이 깡깡나무를 다듬는데 제 일터를 침범했다고 여긴 벌의 공격을 받았다 심각한 상황을 완화하거나 반전 시키기 위해 즉흥적인 개그를 한다 벌에 쏘이는 일이 흔한 일인데다 한두 방 쏘이는 것은 걱정할 일이 아니라 그럴 여유도 있다 도시 문명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모기나 벌, 여러 독충 등에 예민하다 못해 피해의식까지 가지고 전원생활을 기피하기도 하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말과 같은 논리다 전원생활이 주는 이점에 비하면 찻잔 속의 태풍인데 과민 반응이다 도시의 아파트에는 모기도 쥐도, 파리도, 나방도, 지네도 없지만 각종 새들이 춤추고 노래하지 않고 화목들이 피고지는 대자연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벌에게 쏘였다고.. 더보기
고구마밭에서 고구마 줄기를 뒤집어 놓는다 그래야 고구마 뿌리 열매로 양분이 가서 튼실한 알뿌리를 캘 수 있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지인의 도움으로 고구마 성장 억제제를 물에 타서 뿌려주기도 했었다 장마로 신명이 난 고구마 줄기가 활개를 치듯이 줄기의 마디마다 잔뿌리를 내며 밭흙의 품을 갈망한다 새끼 거북이 부화하여 바다로 향하는 절박한 몸부림처럼 하얀 실뿌리들이 흙내음을 맡으며 한 발만 가면 되는데 제동이 걸렸다 뜨거운 볕에 벌러덩 되집힌 채 비닐 위에서 말라버리고 잘 뻗어가던 줄기가 급속히 세력이 약화되고 말 것이다 고구마 줄기에 달린 입자루를 따서 껍질을 벗기면 반찬 자료로 좋기도 한다 그러나 잎자루는 원체 본량이 많아서알뿌리에 비해 사용 가치가 적다는 주인의 판단으로 고행을 치러야 한다 고구마가 원성을 토해낸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