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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의 즐거움

능소화 피고지는 일 간밤에 내린 비와 바람에 능소화 꽃들이 많이 낙하한다 탐스런 꽃송이들이 물기를 머금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진 것이다 아래로 가지를 늘어뜨리고 많은 꽃봉우리를 매달고 있다 밟히지 않게 비로 쓸어 모으며 애석해 하지만 그건 사람의 마음일 뿐이다 비는 멈추지 않고 바람은 짐짓 모르는 체 살랑거리고 눈부신 아침 햇살은 추락한 꽃잎 위에서 뜨겁다 아래로 가지를 늘어뜨리고 많은 꽃봉우리들이 개화일을 기다리며 가슴이 부풀고 있다 피고지는 일이 별다른 일이냔듯이 나무는 여전히 생기가 넘친다 떨어진 꽃은 퇴색되고 구겨져 이제는 아름다움의 시절을 지나 초연하다 이제는 영광과 환희로부터 멀어지고 잊혀지며 기다림으로 텅 비어가야 한다 호화로운 색을 버리고 매혹적인 향기를 벗어나고 부질없는 몸의 형상에서 자유로워진다 더보기
능소화 출입문 위에 능소화가 한창이다 주황색 나팔을 불며 제 존재를 당당히 선포한다 하늘을 향해 울려대는 삶의 찬가다 다소곳이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꽃이 아니라 마치 길거리를 행진하는 취타대처럼 웅장한 위세를 드러낸다 조물주는 꽃들에게 한시적인 축제의 기간을 부여하고 모든 꽃들은 화려하고 아름답게 꽃을 피우며 생애 최대의 삶의 기쁨을 누린다 하늘은 높고 텅 비어서 나무가 자유롭게 자라게 하고 햇빛으로 삶의 양식을 준다 더보기
들깨 모종 옮겨심기 장마철에 접어들었다 언제 비가 오냐며 기다렸었는데 들깨 모종을 옮겨심기하려는 내 나름의 속셈이 있었던 것이다 하루 종일 흐린 날이라 오늘이 딱 좋은 날이다 메마른 밭이 어제 내린 비로 촉촉해져 비닐을 씌우고 옮겨 심는다 아가들아 그동안 좁은 틈에서 다닥다닥 붙어 지내느라 고생 많았구나 이제 넓은 신천지로 이주를 하자구나 이번에는 다섯이 한 가족이 되어 살아보렴 마음껏 팔 벌려 많은 가지를 달고 태양의 정기를 받아들이고 무수히 꽃을 피워 고소한 향기를 품으렴 텃밭에서 일을 하면 수고한만큼의 보람과 기쁨을 얻는다 수확물만이 아니라 땀 흘리고 허리가 아픈 노동이 주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잡초를 뽑아 말끔해진 밭 자체만으로도 일의 보상을 맛본다 어린 작물이 손길을 받고 생기가 돋아나는 모습에서도 생명의 조력자로.. 더보기
메마른 대지의 단물 그 새 많이 가물었는데 오늘 제법 많이 비가 내린다 이제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비다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나만이 아니고 사람만이 아니다 마른 흙에서 먼지가 풀풀 날렸는데 그 메마른 틈을 흘러들어 듬뿍 적시고 어느 새 촉촉해진 대지는 젖내음이 풍겨온다 오늘 아침에는 물조리개로 물을 주지 않아도 하늘에서 베푸는 비는 단물이 초목의 목을 적셔준다 육안으로 보아도 확연히 차이가 나는 옥수숫 대의 키와 왕성한 기운이다 비는 하늘이 베푸는 보편적 시혜다 밭에만 베풀지 않고 , 온 산과 들에 차별없이 베푼다 빗줄기가 조금씩 거세지며 나뭇잎을 씻기고 나뭇잎 표면에서 튕겨지고 아래로 흐르며 스미고 지붕에 떨어진 비는 배수관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순례하듯 흐르며 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며 대양으로 흐로거나 하늘로 흐.. 더보기
비비추 꽃대를 올리다 비비추가 연일 꽃대를 높이 상승 시키는 중이다 곧 있을 축제에 대비한 예비 작업이다 일생에서 가장 기운이 넘치고 아름답고 화려한 시절의 퍼포먼스다 만방에 알리는 축제의 선포다 낮은 자리에 있어 가려지지 않게 높은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당당한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영화로운 제국의 기둥이며 최상의 아름다움을 현양하여 하늘에 고하는 미의 제전이다 더보기
텃밭의 독백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텃밭에 나간다 나를 반겨주는 푸른 생명들이 어제처럼 그리고 오늘에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내가 그들을 반기듯이 그들도 내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반가워한다 목 마르지? 어디 보자 어제보다 자랐나? 실은 이전과 다른 차이를 찾아내고 그 차이를 통해서 노동의 근원적 가치를 느끼게 된다 우선 물을 주어야겠지 습관적으로 물조리개 두 개에 가득 물을 받아 블루베리, 토란, 토마토, 오이, 가지, 호박, 야콘에게 물을 준다 물조리개 4개 분량으로 골고루 나누어 주며 시혜자의 흐뭇한 미소를 띤다 이제는 토마토 두둑으로 가볼까 고작 열 포기도 안되지만 엄연한 토마토 밭이다 어디보자 한 뼘 남짓하던 토마토 모종이 내 키만큼 자랐다 우와♡ 열매를 매단 송이 하나가 새로 생겼네 몇 개를 .. 더보기
뻐꾹나리 야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풀인데 수수한 차림으로 평범해 보여 지나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잡아두지 못한다 꽃은 축제의 현장이자 무대다 무대를 펼치는 과정이 우아하고 아름답다 하얀 천 여섯장을 펴서 둥글게 연결한 것이 마치요가의 달인들이 허리를 뒤로 젖히는 동작과 같다 시작할 때는 여섯장의 천이 주먹을 쥔 손처럼 감싸고 있다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주먹을 펴서 뒤로 젖히는 고난도의 안무다 이와 동시에 무대가 상승하며 연기할 배우들을 맞이한다 에로틱한 분위기에 숨을 멈춘다 드디어 등장하는 청춘남녀들, 남자 다섯과 여자 셋이 둥글게 원을 따라돌며 손을 맞잡고 춤을 춘다 원시 부족들의 축제처럼 이성을 동경하다가 드디어 공개적으로 마음이 끌리는대로 짝을 찾는 광경처럼 ..... 다섯의 수술은 한껏 허리를 젖.. 더보기
미니줄장미 돌담 아래 미니 줄장미의 길을 내준다 작년 봄에 지인이 끊어준 장미 가지 하나로 삽목을 하여 네 포기의 2세를 만들어 심어 놓은 것이다 출입문 위의 아치로 길을 내줄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의 절반은 이미 능소화 가지들이 점유하고 있다 하찮은 일 같지만 즐거움이 따르는 것은 함께 하는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삽목을 하며 정성을 들이는 일과 뿌리를 내려 잎이 나오는 기쁨과 앙증스러운 꽃을 피우는 응답과 길을 내주려 지주를 세워주는 활동들이 만들어내는 과정들이 작은 스토리가 된다 이런 작은 일상들이 모여서 내 개인적인 서사를 만들어 간다 더보기